10화. 내면의 네 명.

로맨스를 못 쓰는 작가가 로맨스에 빠지다.

by INK

시작하기 전-

아, 공모전 준비하느라 오늘이 화요일인걸 깜박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정이 지나기 전에 알아버려서 너무나 다행스러운 순간이다.




글을 쓰는 손과 읽는 눈은 철저히 분리가 되어야 한다.


손은 작품을 써 내려가고, 눈은 몇 시간이 지난 뒤 작품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주로 이럴 때 내면의 붕괴가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신필’ 아니냐고 했다.

우와- 무려 신이 대신 써준 거야? 이거 뭐...


OO님이 방송 중에 갑자기 아이디어를 하나 낸 적이 있다.

무명의 소설가가 매번 공모전과 투고에 실패하고, 자살하기 위해 산속 깊은 곳에 갔는데 각 시대별 당대 최고의 문헌 가들(이야기꾼)들이 귀신으로 등장하여 그의 등단을 돕는다는 얘기다. 아 물론 반전은, 그들이 써 준 게 너무 고리타분하여 등단에 실패...


-맞다.

난 어쩌면 그런 귀신이 들려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 안에는 네 명의 인격이 있다.

1번은 본업에 관련된 놈이다. 이 녀석은 굉장히 고리타분하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그렇기에 타인과의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부분은 ‘시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타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2번은 시나리오를 쓰는 놈이다.

녀석은 처음 글쓰기에 입문하면서 나와 함께했던 녀석인데, 1번의 녀석은 2번이 공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둘은 자연히 분리되었고, 시나리오를 쓰는 놈은 고지식하게도 모든 작법을 혼자 공부하고 완성했으며 때문에 슬로 스타터였다.

그는 처음에 영화 시나리오를 시작했고, 후에 드라마 시나리오로 그 집필의 폭을 넓혀 나갔다.

사실 본업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다.

이건 본업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글 쓰는데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하자면 일단 ‘잠’ 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1번은 쉬게 놔두고, 2번을 불러오는 것...


3번은 웹소설을 쓰는 놈이다.

아, 이 녀석은 그냥... 효자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조차 모르는 웹소설 플랫폼이 많이 존재하고, 이 플랫폼들은 웬만하면 어느 정도 글이 올라가고 난 뒤, 유료화가 가능하게끔 구조화되어있다.

작은 작업실을 사용하며, 그 월세와 관리비를 충당할 정도로 꾸준하다.

마지막 4번은 2,3번을 다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녀석이다

녀석의 주 특기는 소설이나 에세이등의 순수문학과 장르 소설 되시겠다.

또한 이놈은 자칭 ‘우주작가’이며 본인이 집필한 모든 글의 형식을 바꾸는데 능숙하다.

영화시나리오를 드라마 시나리오로, 드라마 시나리오를 웹소설로 바꾸고...

웹툰이나 숏폼이 되었을 때, 전문 작가에게 그의 글을 맡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머지 아예 웹툰용 시나리오나 숏폼용 시나리오로도 글을 변형시킬 수 있다.


좀 대단한 녀석임에 틀림이 없다.


1번을 제외하면 다 비슷한 놈들인 것 같지만, 2.3.4번은 서로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글을 쓰는 행위가 언제나 즐겁다.

2번을 제외한 3.4번의 인격은 최근에야 생겨났고, 이들에 대한 필명은 IN.K이다.

맞다. 2번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IN.K라고 부른다.

점 하나만 지우면, 단지 글을 쓰는 도구 중 하나인 잉크다.

하지만 나는 IN.K를 그저 ‘그런 존재’ 로만 두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이라고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우리라는 말까지 자연스레 붙인다.


나중에 독자들이 이 비밀을 알게 되면

“와... 이거 진짜 미친놈인가?”


하고 소름 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 필명은 아주 단순한 문장에서 시작됐다.

“It’s Not normal. K.”

K는 내 이름 일부의 이니셜이고, 동시에 언젠가 내 작품이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자연스럽게 Korea의 K로 확장될 여지도 품고 있다.

아 어쩌다 보니, 난 정상인이 아닙니다라고 고백을 해 버렸네.


넘어가고-


OO님을 위해 커리큘럼을 준비하던 나는,

어제 그녀의 방송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화, 금 연재
이전 09화9화. 트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