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를 못 쓰는 작가가 로맨스에 빠지다.
■ 오지랖 :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
매번 그녀는 그녀의 방송에서 읽어주는 ‘글’에 대해 조심스럽다.
하나는 저작권 관련된 문제이고, 하나는 글을 선별하는 데 있어서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그 걱정이 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글을 써서 읽기 위해 글 쓰는 방법을 배우시고자 했고, 그래서 내가 도와주기로 한 것은 여태까지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셜리 잭슨 – 「The Lottery(추첨)」 이란 소설이 있다.
1948년에 처음 발표된 이 소설은 당시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독자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일상의 정상성에서 시작하여 작은 균열이 발견되고, 숨겨진 규칙 속에 집단의 광기가 드러난다.
짧고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개방된 해석은 잔존하는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후대 작가들의 작품들에 기본 템플릿이 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공포단편을 쓰길 원했으니, 이 작품을 통해 먼저 그 맛을 들이기를 원했고 나는 많은 시간을 공들여 골라낸 이 글을, 교육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의 방송에서 읽으라는 뜻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내 의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겠으나 방송 중반부터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보낸 번역본은 초벌 번역본으로, 날것의 느낌이 많이 있었고 때문에 일부 오탈자가 있었다. 그녀는 이 오탈자부터 지적하기 시작했다.
“어~ 뭐야아~”
“어우~ 재미없어~”
“이게 왜?... 왜 공포소설인 거죠?”
“아무리 잉크님이 소개해 주신 작품이라 해도 이건 너무 별로야...”
“아무리 많이 줘도 100점 만점에 10점도 못 주겠어요~”
...
그녀의 방에 십 수명?
아니 스무 명 정도 있었나?
그녀를 위해 했던 나의 행동과 노력은 순식간에 피로함이 되어 나를 덮쳤다.
어느덧 그녀를 위했던 나의 마음. 그 근본이 흔들리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는 뭘 위해 그녀에게 나의 시간을 소비했는가?”
더 이상 그 방송을 들을 이유가 없었고, 말없이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죄송합니다만, 할 얘기는 하고 갈게요. 셜리잭슨의 제비 뽑기라는 작품을 OO님께 권해드린 건, OO님께서 스릴러장르의 글을 쓰고 싶어 하셨고, 처음에 설명드렸지만 이 짧은 소설에는 스릴러의 구조적 측면이 거의 교과서처럼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중략)... 당분간 글쓰기에만 집중해야겠어요. 괜히 오지랖 떨어서 맘에 상처만 남았어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날 답문이 왔다.
/정말 죄송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저의 솔직함이 IN.K작가님께는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좋은 글임에도 번역 과정에서 어렵고 재미없게 쓰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제비 뽑기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쉬운 글을 선호하다 보니. 외국 작가님들의 글은 피하는 편이에요. IN.K 님께서 저를 위해 선별....(중략)... 글 편식이 심한 점 우주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
서로 간의 입장 차이인가?
OO님이 나의 친절에 무례했음은 분명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OO님께 ‘이 글을 한번 읽어보시죠’ 하고 권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그녀는 정말 ‘글쓰기’에 진심일까?
방송 중, 100명이 읽어서 99명이 재미있다 해도 재미없는 1명이 자신일 수 있으니, 이건 너무 당연한 반응이지 않냐고 되려 묻는 그녀의 행동 속에서 그 진심을 나는 찾을 수 있을까?
그녀의 내면 속의 작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준비해 온 나의 며칠간의 노력은 도대체 뭐였지?
그리고 그날 이후, 그리고 오늘까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점점 나의 글은 완벽한 에세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