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를 못 쓰는 작가가 로맨스에 빠지다.
지난 사건 때문에 좋지 않은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글 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 괜찮은가?
서운함은 어느새 걱정으로 자리 잡았다.
내 반응 때문에 OO님이 글 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난 나름의 대단한 원석을 찾은 기분이었는데, 스스로 빛을 내기를 거부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어쩌면 그녀를 위한답시고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나의 속셈이 있었나?
하지만 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이게 의무감인 건지 뭔지 도통 모르겠다. 고집이라면 지금이라도 멈추고 싶다.
좋은 소식도 있다.
그간- 플랫폼의 메시지를 통해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게, 수업을 위한 디 x 방을 개설하여 함께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오픈채팅 방도 만들었다.
아직 연락처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연락처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에겐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최근 이틀째 그녀의 책방을 찾지 않았다.
그간 몇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게 그녀의 책방을 찾지 않은 이유는 아니다.
그녀와 두 번의 수업이 있었다.
월요일 그녀의 방송이 끝난 뒤...
첫 수업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어렵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고 그 모든 투정을 받아주기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과제들이 있었다.
그녀에게 반드시 필요한(글을 쓸 때) 몇 가지를 그녀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 이날이 문제였지...
나는 내가 뭔가를 설명할 때 집중을 못하는 사람을 보면 대화하기가 싫어진다. 이건 비단 나쁜 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얘기했었다. 받아 적지 말고,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쭉 듣기만 하라고. 어차피 계속 되풀이되는 설명과 작법들일테고, 적어놓고 기억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체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야 오래 남으니까....
그런데 설명을 하던 중 그녀의 타자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상했고,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적어야 된다고 계속 주장한다. 나는 적지 말라고 하고. 의견이 대립되고 나중에는 몇 가지 이유로 충돌을 한다.
“하... 잉크님. 저희... 지금 뭔가 안 맞죠? 뭔가 잘못되었죠?”
그녀가 먼저 얘기했다.
“네. 안 맞네요. 그만하죠...”
라고 얘기할 뻔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침묵으로 대신했다.
“어떻게 할까요? 방법을 바꿔볼까요?”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낸다고 했다. 그래서 무섭단다.
아니, 나처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게다가 난 화를 잘 내지 않고 욕도 잘하지 않는 편이다.
올라오는 화를... 아- 이렇게 쓰다 보니 화를 낸 것도 같다.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여하튼. 화를 억누르며 그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눈에 보이면, 옆에 있으면 휴지를 주던, 눈물을 직접 닦아주던, 따뜻하게 안아주던... 뭐라도 할 텐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기력했다.
그녀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걸 그녀에게 맞추어 주기로 했다.
원래는 그녀의 삶이 녹이든 에세이를 쓸 것을 추천했었다. 그녀의 삶 속에는 독자로 하여금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그녀의 탄생, 그녀의 가족이야기 등 이야기의 핵심 요소인 ‘선명한 결핍’이 이미 잡혀 있었으며, 주인공의 결핍 → 욕망 → 방해 → 선택 이 공식을 그대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되었다. 작품 소개문도 이미 만들어놓았다.
난독증+ ADHD. 그녀의 첫 에세이. 크- 미쳤다 진심.
성장물 + 휴먼드라마 + 가족극 + 자전적 감성 + 예술 성장물의 혼합
오 OO님, OO님, 당신의 삶은 이미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구조’를 다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걸 안 한다고? 하...
‘추리’ 또는 ‘스릴러’의 장르물을 원하고 있었고 그건 아마도 그녀가 쓴 첫 소설의 장르가 그러했기에 거기 얽매여 있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읽히는 소설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겠단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녀를 두 번 울릴 수는 없으니...
“좋습니다. 그럼, 추리나 스릴러 장르에 맞추어서 작품을 써 보죠. 일단 다음 시간까지 로그라인 세 개를 만들어 오세요. 저도 두 개를 준비하겠습니다. 다섯 개의 로그라인을 같이 살펴보고, 더 재미있는 작품을 우리 같이 써 보죠. 제 로그라인이 뽑혀도 OO님을 공동집필로 할 것이고, OO님도 그렇게 해 주셔야 합니다”
웃으며 얘기했다. 속은 엄청 쓰리다 지금.
“네. 그런데 걱정되고 그러네요...”
“뭘 걱정해요. 제가 옆에 있는데...”
그리고, 그날 아침(우린 새벽에 수업을 했다) 몇 개의 로그라인이 도착해 있었다.
이걸... 로그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초보이시니 친절하게도 내가 로그라인처럼 보이게끔 세 개 다 수정을 했다. 그리고 피드백까지...
시간이 좀 지나고... 원래 월요일에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그날 저녁에 미팅이 잡혔다.
출판 관련은 아니고, 본업에 관련된. 그래서 날짜나 시간을 조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OO님께 하루전날. 그러니까 일요일에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보냈다.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바쁘시면 수업 안 해도 되옵니다.”
“일이 먼저죠”
진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맞는 건가? 내가 괜히 엉뚱한 생각으로 그녀를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고 나서, 난 이틀째 그녀의 책방엘 들르지 않고 있다.
내가 없어서 그녀가 편할지,
그녀를 지워서 내가 편할지,
... 일종의 테스트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