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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 Nov 19. 2024

[2] 엄마가 결혼한 남자야!

오늘도 아이 놀이치료를 다녀왔다. 

늦은 시각, 서진이는 합기도를 빠지고 싶다고 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타협점을 찾았다.


"빨래 개는 걸 도와주면 오늘은 안 가도 돼."


남편은 야근이라 늦고, 서진이와 나 둘 뿐인 거실. 누워서 빨래를 개겠다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10분 안에 안 개면 합기도 보낼 거야!"


그러자 서진이가 따져 물었다.

"10분 안에 빨리 개라는 건, 결국 합기도 보내려는 속셈 아니야?"

나는 농담처럼 던졌다.

"내가 뭐 아빠인 줄 알아? 엄만 그렇게 야비하지 않아."

그때였다.

"엄마는 아빠를 왜 그렇게 나쁘게 해? 엄마가 결혼한 남자야!"

순간 정신이 띵했다. 열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최근 남편은 서진이와 편을 먹고
나와 여성을 폄하하며 놀리곤 했다.
둘이서 쪽수로 밀어붙이는 날이 잦았다.

그때마다 나는 걱정했다.


'서진이가 아빠의 그런 이간질과 나쁜 말버릇을 닮진 않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진이는 그런 아빠를 닮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가 남편의 나쁜 면을 닮아가고 있었다.

놀이치료 상담사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은 결국 둘 중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게 될 거예요."

서진이는 이미 자신만의 기준과 판단력으로 엄마나 아빠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은 주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아이고! 그러네!! 엄마가 깜빡했네!! 네 아빠가 바로 엄마가 결혼한 남자네!! 하하하하!!"

나는 어설픈 우스갯소리로 이 낯 부끄러운 상황을 간신히 모면했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걸.

아이는 이미 충분히 현명했는데 엄마인 내가 더 어린아이 같았다는 걸.

오늘도 서진이는 나에게
작지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빨래개기로 시작된 저녁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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