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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 Nov 19. 2024

[1] 상담사가 이혼하라는데

두 달 전, 아이의 놀이치료 상담사가 바뀌었다.  

어머님도 한번 오시면 좋겠어요.


상담사의 말에, 회사 근무시간까지 조정하며 무리해서 시작한 월요일 저녁 상담.  

그렇게 벌써 3주째다.

첫 상담에서 상담사가 물었다.  


결혼생활은 어떻게 계속 유지하고 싶으신가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실 이혼을 늘 꿈꾸며 임시로 살고 있어요!


다른 상담사들과 달리, 이 분은 내 말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우유부단함을 돌아보게 했고, 경각심을 주었다.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엄청 좋은 아빠가 있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혼을 확신하신다면 미루지 않는 게 나아요.
특히 중독, 외도, 폭력은 절대 고칠 수 없는, 이혼해야 할 사유예요.


상담사의 단호한 말에 나는 천천히 실토했다.

술, 담배, 게임, 미디어 중독.  

세 번의 외도 정황과 증거들. 

언어폭력과 아이를 향한 신체적 폭력까지.  

남편은 이 모든 것이 해당했다.


그런데도 나는 머뭇거렸다.  

마치 계륵 같은 존재랄까.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속상한.  

깨진 그릇 같은 우리 가정.  

구멍이 나서 물이 새고 깊이도 낮지만,  

그래도 완전히 산산조각 난 것은 아니다.


남편의 폭력성이나 외도 의심은 분명 크리티컬 한 문제다.

하지만 그 빈도가 잦지 않고,  

잠시 피했다가 돌아보면 또 안고 살 수 있는 정도다.


남편은 나를 무시하고 군림하면서도 묘하게 내 눈치를 본다.

전기차를 사려고 안 하던 대화도 시도하고,  

최근엔 본인의 야근이 갈수록 잦아진다며 하원 도우미를 직접 구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맞벌이를 하며 많은 도우미를 써봤지만, 남편이 이렇게 직접 나서기는 처음이다. 드디어 육아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걸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꼭 필요한 존재다.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상담사는 의외의 조언을 했다.  


엄마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은 결국 둘 중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게 될 거예요.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 정도면... 현명하게 밀당하면서 살아보세요.  비슷한 사람끼리 연결되는 게 세상의 순리예요.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이 안에서 최선의 선택과 태도로 살아가보세요.


3주간의 상담을 거치며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깨진 그릇이라도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나는 내 몫을 지혜롭게 챙기며 살아갈 수 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때로는 현명하게 다독이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것이 내가 선택한, 아니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일 것이다.  

깨진 그릇처럼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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