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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 Oct 19. 2024

외딴 조각의 아우성

냉동 조각 식사

"피곤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회의만 5개, 너무 긴 하루였다. 퇴근길 내내 밀렸던 차 안에서 온몸이 찌뿌둥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다 되었다. 현관에 널브러진 아이들의 신발을 겨우 피해 거실로 들어섰다.


"엄마 왔다!"


나름 밝게 목소리를 내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부엌으로 향하니 남편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뭐 만들어?"


남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냈다.


"계란 볶음밥"


남편은 짧게 대답하며 요리에 집중했다.

나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식탁에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계란 볶음밥 냄새가 진동했다.


"다 됐다. 얘들아 먹자!"


남편과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나도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아 같이 먹으려고 했지만, 식탁에 내 밥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보았는데 깨끗이 빈 프라이팬만 놓여 있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네?"


남편은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응"이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밥 한 주걱이랑 계란 하나만 더 넣어서 만들었으면 되는데 내가 저녁 안 먹고 퇴근했는지 알면서도 굳이 3인분만 차린 남편이 새삼 낯설었다.

내가 먹을 것을 찾아 냉장고를 다 뒤지는 동안 남편은 TV에 집중하며,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냉동 김치볶음밥과 냉동만두를 꺼내자 남편은 "2인분 해!"라고  짧게 말하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밥 다 먹었잖아. 더 먹을 거야?"
"응. 나도 먹게."


내가 요리하는 사이 남편과 아이들은 후다닥 밥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다 됐어. 먹으려면 나와!"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해달라며! 안 먹을 거야?"


"아, 그냥 먹고 남겨놔. 이따 밤에 내가 먹던지 할게"


남편의 무심한 말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퇴근하면 서로의 식사를 챙겨주고 하루 일과에 대해 대화를 하며 일상을 마무리하는 건 과욕인 걸까?

나는 주섬주섬 남편과 아이들이 널려놓고 간 식사의 잔재들을 대충 밀쳐 치우고 털썩 식탁에 앉았다.


프라이팬을 끌어안고 밥을 먹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예전에 가족과 함께 요리하며 웃던 따뜻한 저녁 식사 시간이 그리웠다. 지금은 텅 빈 식탁에 혼자 앉아 냉동식품을 데워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뜨거운 밥알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지만, 마음은 차가워져 갔다. 마치 냉동실에서 막 꺼낸 냉동식품의 조각처럼.

핸드폰을 켜자 SNS에 올라온 친구들의 행복한 가족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저렇게 화목한데,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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