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꽃 Nov 13. 2024

닭갈비 당면이 불러온 파장

'엄마는 따따따봉!!'에 숨겨진 의미

어느 일요일 늦은 저녁, 남편이 냉장고에 사다 놓은 닭갈비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다. 주말을 마무리하며 집안 곳곳을 분주히 정리하던 나는 저녁 준비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늦은 점심을 먹었던 터라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지만, 가족의 화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닭갈비 양을 정하는 문제부터 시작해 감자 손질, 넓적 당면 조리 등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특히 남편이 요청한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라는 넓적 당면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편의 애매한 지시에 전자레인지와 냄비를 오가며 몇 번을 시도했지만, 당면은 좀처럼 먹기 좋은 형태가 되지 않았고 남편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세상에!! 넓적 당면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그거 하나 똑바로 못하냐??"


나름 기껏 도우려다가 핀잔만 받고 마음이 상했다. 속상한 마음에 뒤돌아서는 내게 그는 "이따위로 해 놓고 어디가?!"라며 확인 사살을 했다. 순간 닭갈비고 뭐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서 탄천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밤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혼자 정신없이 탄천을 달리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남편의 잔소리와 서툴렀던 나의 요리 실력, 좁은 부엌에서의 실랑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참을 달린 후,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자 아버지는 나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나와 비슷한 경험이 많아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신다. 아버지와 장시간 통화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듯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애들 재울 시간인데, 와야지!"


나는 "알았어." 단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상태였다.


둘째 아들 우진이를 재우려고 방으로 들어가니, 우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갔었어?"
"탄천에."
"왜?"
"응. 아빠가 요리 잘 못한다고 구박하고 너무 짜증내서 화가 났어."
"아하! 엄마 삐졌었구나?!"


우진이는 내가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그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아마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왜 나갔는지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 사이에서 눈치 보며 아빠에게 엄마의 행방을 묻지 못한 채 불안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했다.


우진이는 "엄마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나 봐!"라며 어른스럽게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나란히 누웠는데, 우진이가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물었다.


"엄마, 엄마한테는 내가 어느 수준이야?"


아들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야 최고 따봉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은 웃으며 "에이. 아니, 내가 그 정도는 솔직히 아니지. 난 최고와 중간 사이 정도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아들의 귀엽고 솔직한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엄마는 우진이에게 어느 수준이야?"


나의 물음에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엄마는 최고 따따따봉이지!"라고 외치며 양손으로 엄지를 번갈아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엄마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사랑이 뒤섞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한없이 맑은 우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편의 핀잔은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좁은 부엌은 우리 마음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밝은 웃음과 행복을 위해 더 엄마답게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