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형 졸혼 계약서??

To be a 쇼윈도 부부…

by 글꽃

"오늘까지 이 졸혼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당장 이혼해."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갑고 흔들림이 없다. 마치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는 이미 단단히 결론을 내린 사람 같다. 그는 자신의 젊음이 '의미 없이 흘러 억울하고 아쉽다'고 한다. 덧붙여 '졸혼이든 이혼이든 하루빨리 하고 마음껏 여자들을 만나며 이제 제대로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말까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새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오늘 안에 내리라는 그의 강요는, 너무나 가혹한 짐으로 나를 짓누른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너무나 힘들다.


1. 남편의 오해와 나의 진실: 라인, 그리고 여행


그의 분노는 나의 '라인' 메시지 때문이었다. 내가 대만에서 돌아오던 날, 잠시 켜둔 휴대폰을 보고 그는 격노했다. 다른 남자들을 만난 것 같다며, 자신이 본 메시지를 내가 지웠다며 '신뢰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급기야 부부싸움 중에는 한밤중에 친정 아버지께까지 전화해 '당신 딸이 다른 남자 만나고 다녀서 이제 같이 못 살겠어요. 놀라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끊기까지 했다. 마음 여린 불쌍한 나의 아빠는 또 얼마나 놀라셨을까.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없고, 라인은 남자든 여자든 평범한 친구나 지인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는 전혀 믿지 않았다. 뭔가라도 잡아내야 한다는 듯 혈안이 되어 내 라인 창을 하나씩 열어 일일이 내용을 확인했다. 이미 격해진 감정으로 외도의 증거를 찾으려는 그와 더 큰 싸움을 만들까 봐, 순간적인 두려움에 나는 황급히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가로채 앱을 지워버렸다.


사실 내가 라인을 그 앞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열어둔 건 정말 별 내용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평소 의처증이 심한 남편이 의심의 눈으로 하나하나 본다면, 사소한 대화조차도 문제 삼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 앗차 싶어 급히 폰을 뺏고 라인을 지운 것이다. 중요한 사람도, 중요한 내용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라인을 다시 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른 이성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남편과의 싸움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일적으로라도 남자와 단둘이 커피 한 잔만 마셔도 바람'이라며 흥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라인 메시지 내용은 괜한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오해의 불씨가 될 만한 것들이 있었기에 무한정 그가 원하는 대로 다 오픈해 줄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지만, 나로서는 더 나은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살면서 라인 앱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은 물론, 학교, 식당, 관공서, 심지어 일 관련 소통까지 모두 라인으로 진행했다. 라인은 그곳에서의 나의 생활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남편은 나의 라인 사용을 보며 그렇게까지 의심했다. 왜냐하면 남편의 라인 사용은 나와는 달랐으니까. 남편의 라인은 외국인 여성들이나 유흥업소 여성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였다. 남편은 나를 보면서, 아마 자신의 라인 사용법으로 나를 재단했던 것일 테다. 그게 남편이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나의 라인 사용을 의심했던 진짜 이유였겠지.


내가 일본이나 대만으로 홀로 떠났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난 몇 년간 착취적 성향의 나르시시스트인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자아는 무너져 있었다. 급기야 작년 말부터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찾아왔고, 2년 전부터 진행됐었던 갱년기 증상까지 겹쳐 나는 몸과 마음 모두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쉴 틈 없이 나를 짓누르는 회사 업무와 집안일들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할 시간이 간절했다. 사실, 일본행도, 대만행도 '도피'의 성격이 분명 있었다. 남편이 내가 일본으로 요양 간다고 했을 때 '어디 애 엄마가! 그렇게 아프면 정신병원에나 들어가라'고 소리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대만 여행도 남편과의 그런 격렬한 갈등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는 것을 피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에게는 기존의 모든 환경에서 벗어난 홀로서기 시간이 절실했고, 나르시시스트의 표본인 남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나의 정신질환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3개월간 있으면서 계속 증량해 오던 모든 정신과 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으니까.


나를 그렇게 정서적으로 짓누르고 악담을 퍼부으며 일본행을 막았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일본에 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느라 수고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등하원 도우미 이모님과 친정 아빠를 우리 집에 배치해 놓고 가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의 그간의 노고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한국에 와서는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잘하고 싶고 새로운 마음으로 합심해 보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절망까지 생각했던 마음을 다잡고, 우리 가족을 위해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새 힘을 장전해 돌아온 것이다. 내게 그 여행은 나 자신의 재건과 앞으로의 우리 가정을 위한 에너지원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2. 졸혼 계약서: 불공정함과 나의 선택


하지만 귀국 후 불과 며칠 만에 그가 내민 '졸혼 계약서'는 나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혼은 피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자'는 명목 뒤에는 나를 이 집의 '생활 관리 직원'이나 '육아 도우미' 정도로 규정하는 불리한 조건들로 가득했다. 신혼집 마련을 위한 나의 초기 자금 기여는 무시되었고, 남편이 앞으로 벌어들일 돈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더구나 그 계약은 그의 '노골적인 외도를 앞으로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었다. 이성 관계를 묵인하고, 향후 생성 자산에 대한 나의 권리까지 포기해야 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계약이었다. 이는 내 자존심과 미래를 팔아넘기는 것과 같았다. 그런 계약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격렬한 추궁 속에서 당황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일단 졸혼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챗GPT로 순식간에 작성된 그의 동거형 졸혼 계약서의 상세 항목들을 살펴 본 순간, 나는 충격받았다. 이런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 결혼 생활의 껍데기만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최소한 몇 가지 조항을 수정해 줄 것을 제안했지만 모두 차갑게 거부당했고, 이대로 당장 서명하지 않으면 남은 건 이혼뿐이라는 통보를 들어야 했다.


3. 나는 누구이며,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남편은 이제 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상실되어서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라인으로 유흥업소 여성들과 소통했던 과거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팔팔정, 콘돔과 러브젤이 발견되었을 때의 당황스러움, 스스로 아이들에게 잘못 내뱉었던 '오빠'라는 호칭… 가족은 누나뿐이고 나도 연상인데 어떻게 "오빠가"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느냐고 내가 따져 묻자 그저 회사 사람이라며 횡설수설하던 그의 모습... 그 모든 불신과 배신감을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감내해야 했던가. 누가 우리의 신뢰를 먼저 깨뜨렸는가? 남편은 라인 때문에 나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그의 일부만이라도 믿으려 노력했던 지난 세월은 모른 척 하는가? 나는 이런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했다. 내가 이토록 지치고 힘들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그의 그러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이 모든 아픔 속에서도 나는 이 결혼생활을 14년간 버텨왔다. 남편의 외도와 불신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흔들림 없는 가정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나는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단지 다른 남자 만나 연애하거나 재혼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가 이혼하자 했을 때 얼른 했거나 진작 이혼을 하자고 내가 먼저 했을 것이다. (벌써 여러 차례 우리가 싸울 때마다 먼저 이혼하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늘 그였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버티겠는가. 사실 나의 진정한 바람은 이 집의 안주인으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리고 그의 배우자로서, 진심으로 관계를 회복하여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다시 일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집의 안주인이고 아이들의 하나뿐인 "친"엄마이다. 내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나는 단순한 살림/육아 도우미나 돈 벌어오는 일꾼이 아니다. 그의 성적 만족을 줘야 하는 유흥업소 여성도 아니다. 힘들어도 부족해도 여기가 내 자리다. 나는 그동안 나를 찾고 내 정체성을 명료히 하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4. 아이들을 위한 최선, 그리고 나의 절박한 희망


아이들 앞에서 부모 모습을 연기하는 '쇼윈도 부부'는 과연 진짜 '가족의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정말 부모 사이의 이상기류를 느끼지 못할까? 가짜 '행복'을 연기하는 것은 결국 나를 다시 망가뜨릴 뿐임을 안다. 남편과 나, 우리 둘 다 지금 이대로는 불행하고 힘들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아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또한 같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는 '연기'를 주장하고, 나는 '진정한 회복'을 원하는데 그는 그것을 외면하는 걸까.


당신이 '졸혼이라는 형태로 연기를 계속하자'고 한다면, 그래, 당신은 그렇게 연기를 계속해라.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그런 '연기'에 맞춰주지 않고, 그냥 내 마음이 닿는 대로 할 것이다.
졸혼 계약서의 '이성 관계 묵인' 조항이나 '향후 생성 자산에 대한 나의 권리 포기' 등의 조항은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지난날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며 한없이 약해졌지만, 나는 결국 혼자 다시 일어섰다. 동반자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나는 혼자서 새로운 세상에 나를 던져가며 힘들게 내 정체성을 다시 찾았고, 이제야 비로소 나란 존재가 명료해졌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결심과 희망을 졸속으로 진행된 졸혼 계약서로 종지부를 찍고 싶지 않다.


우선 나는 졸혼이든 이혼이든 지금 당장은 그 어떤 급한 결론도 내리고 싶지 않다. 이 불합리한 졸혼 계약은 서둘러 진행하기보다 모든 결정을 잠시 보류하고, 결혼 생활은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합리적이다. 나는 그동안 엄마의 빈자리를 지나오면서 힘들어했던 아이들을 위해 더 현명하고 따뜻한 엄마가 될 것이다. 서로 노력해서 존중하고 위하는 부부까지 되어 온전한 가정을 완성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부부상담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남편의 모습에 마지막 희망의 불꽃도 사그라지는 기분이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 핑계대지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결정을 하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진짜 내 금쪽같은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에너지가 넘치는 이 아이는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행복해한다. 내가 관심 줄수록 확연히 밝아지는 모습은 정말 보람되고 사랑스럽다. 다 큰 것 같아 보이는 첫째도 아직은 여린 사춘기 소년이다. 엄마 품속에 파고드는 그 아이에게도 아빠의 조건적이고 착취적인 사랑이 아닌, 엄마의 무조건적인 애정이 절실하다. 학업이 힘들 때 옆에서 함께해주면 곧잘 따라오는 이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의 손길은 절실하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들을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남편에게만 맡겨둘 수 있겠는가.


오늘 아침에도 악몽과 배탈에 시달리다 잠에서 깼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불신하고 냉담한 남편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내가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 3개월이라도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일본 요양과 대만 여행을 통해 힘들게 치유했던 공황장애가 재발하려고 한다. 너무 두렵다. 내가 과연 이 모든 것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올해는 넘겨보고 싶다. 어떻게든 이 집에서 아이들이 학군 변화 없이 안정되게 학창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의 경제적 안정을 확보한 다음 이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최선의 그림이다.


아침부터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글로 풀어놓아본다. 오늘도, 이 절망의 문턱 앞에서… 나는 다시 희망이라는 끈을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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