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그림자
관계라는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는 때론 선명하고, 때론 흐릿하다. 특히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마치 안갯속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의 불안과 서운함을 능숙하게 내게 투영했고, 내가 괴로움에 눈물 흘릴 때마다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마치 나의 고통이 그의 허기진 자아를 채워주는 유일한 양식인 것처럼.
도쿄행을 앞두고, 그의 불안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직접적인 반대는 없었지만, 기념일의 무심함, 불필요한 검사 요구 및 바쁘다는 교묘한 회피 방식으로 나를 끝까지 계속 흔들어댔다. 그의 마지막 발악은 마치 어린아이의 떼쓰기 같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격정의 눈물을 스스로 닦아내고 해탈한 모습으로 쿨하게 웃으며 그를 대할수록 그의 가면은 서서히 벗겨졌다. "그러니까 왜 (날 혼자 남겨두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안 했냐! 날 (감히) 병균 취급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며 울먹이는 그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느꼈던 불안의 실체가 그의 미숙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재확인해 주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서운함과 불만을 내게 투사했고, 그것만이 그의 남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며 표현할 수 있는 나름 최선의 표현 방식이었것 같다. 차라리 애초에 서운함과 불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면 내 마음도 훨씬 더 수용적이었을 것이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또 다른 대안도 함께 찾아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뒷북치는 미숙한 수동 공격은 내 마음을 더욱 냉담하게 하였고, 그의 돌려 까기 식 배려 또는 복수는 유리멘탈인 나를 한 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했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그와의 관계는 마치 끝없는 숨바꼭질 같았다. 그의 감정을 읽고, 그의 불안을 달래고, 그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받아주는 일은 너무나도 지쳤다. 사실 그건 내게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큰 시련이었다. 산산조각 나버린내 생활의 결핍을 채워주던 그는 나의 유일한 피난처였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그의 그림자에 갇혀있지 않기로 했다.
그의 미숙함은 그의 한계일 뿐, 나의 몫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미숙함을 채워주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의 미숙함을 감당할 에너지가 없다. 나는 우선 나를 스스로 마주하고, 나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실적 책임감과 정서적 두려움이 모래주머니가 되어 새로운 나를 향해 가는 나의 두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지만… 도쿄의 봄, 그곳에서 만날 새로운 나를 기대하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불완전한 허상의 그림자에 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