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피자파티)
금요일 밤. 오늘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으로 퇴근 후 아이들의 집으로 향했다. 법적으로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넘기기로 했건만, 여전히 내 마음은 아이들에게 쏠려 있고, 이곳이 내 집이라는 익숙한 감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미래의 전남편은 오늘 늦을 테니 아이들을 봐달라 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고, 나는 일부러 조금 천천히 들어선 현관문 앞에서 피자를 든 그와 마주쳤다. '맞다! 금요일은 파파이스 원플러스원 하는 날이지' 하는 스쳐 가는 생각. 우리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피자를 식탁에 올려놓으며 “먹고 남은 건 냉동실에 넣어놔”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방으로 사라졌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우리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펼쳐 놓고 막 먹기 시작했을 때, 그가 방에서 나왔다. 큰 아이에게 먹던 피자를 자기 입에 넣어달라고 장난스레 요구했다. 아이는 “싫어!” 하며 자기 입으로 쏙 넣어버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먹던 피자 한 조각을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따뜻했다. 어쩌면 그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본 둘째 아이가 순진한 눈으로 물었다. "둘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왜 아빠는 엄마를 다른 집에 살게 했어? 왜 집을 두 개로 나눴어?" 순간 모든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 따로 사니까 사이가 좋은 거야. 같이 살면 이렇게 사이가 좋지 못해. 그래서 우리는 따로 살아야 돼.”
아이들은 그 말을 이해한 듯 깔깔대며 웃었고, 나도 억지로 미소 지으며 함께 웃었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렇게 오손도손 피자를 먹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정말 '가족' 그 자체 같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짧았다. 그는 피자 한두 입을 뺏어 먹고 다시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았다. TV 소리가 거실까지 크게 울렸고, 그는 방 안에서 저녁 내내 깔깔거리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이따금씩 "숙제했냐, 잠자라, 빨리 자라!"는 아빠의 먼 고함만 들려왔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오래간만에 엄마랑 같이 TV를 보다가 잘 시간이라는 아빠의 고함 소리에 눈치를 보며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 아이들은 다시 내 방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왔는데 보자마자 잠자러 가긴 너무 아쉬웠나 보다. 우리는 작은 침대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로 큰 아이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였고, 내가 경청하는 동안 둘째는 잘 모르는 내용에도 눈치를 보며 이야기의 틈새를 찾아 끼어들려 애썼다. 그저 우리 셋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한 침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행복했다.
다시 애들 아빠에게서 먼 고함 소리가 들렸다. 큰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빨리 자!" 하고 다그쳤다. 큰 아이는 마지못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둘째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이의 온기, 끊임없이 몸을 꼼지락거려도 놓지 않고 품에 안으며 한없이 아껴주었다. 아이는 안아달라면서도, 다시 도망치다가 또다시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의 계속되는 변덕에도 나는 몇 번이고 자세를 바꿔가며 아이를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 이윽고 내 아이는 내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었다. 나 역시, 이곳이 내 집이라는 착각 속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오늘 집에 들어오기 전, 친정 엄마 아빠와 차 안에서 한 시간가량 통화를 했다. 양육권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긴 것이 너무 불안하고, 그가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고 방치하는 것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뒤에서 다 챙겨야 할 게 너무 많고, 아이들도 나를 너무 그리워하며, 나 역시 아이들이 너무나 그립다고. 이대로 이혼하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금이라도 합의를 뒤집고 양육권을 다시 가져오고 싶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은 마지막까지 갈팡질팡하셨다. 처음엔 "둘째만 어리니까 데리고 오라" 했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첫째도 불쌍하니 첫째도 데리고 오자" 했다가, 다시 "둘 다 데려올 거면 차라리 그 집에서 네가 살고 남편을 내쫓으라"라고 했다가, 또 "그냥 둘째만 초등학교까지 키우고 이후엔 다시 애들 아빠한테 가라고 해라"는 등 끊임없이 말이 바뀌었다. 한 시간 내내 이어진 혼란 끝에, 결국 "그냥 지금 이대로 지내자. 대신 네가 더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특히 둘째 아이는 2~3년 정도 고학년이 될 때까지 양육비 준거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같이 산다고 생각하며 더 세심히 챙기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이들을 아예 데리고 오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빠에게서 정서적으로 방임되는 내 소중한 두 아이를 데려오고 싶고, 내가 키우면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없다. 혼자서 아이들을 정말로 끝까지 잘 키워낼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인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지만 데리고 오지 못하고, 양육권을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내 마음을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킨다. 그리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이 가족의 일원인 것처럼 웃고 먹고 즐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집을 드나들 수 있는데, 왜 따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사실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같아서는 너무나도 행복한 가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또 속으면 안 된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 따뜻하게 '햇볕정책'을 펼친 후, 내가 방심하면 가차 없이 나를 공격하고, 깎아내리고, 인신공격을 하며 대하고, 가스라이팅했다. 그때마다 나는 공포에 질렸고, 치가 떨렸다. 그래서 이혼을 하고 싶었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속지 말자. 그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 이 집에 자주 방문하는 것이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엄마의 행복을 '연기'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자.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10년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을까? 나만 잘하면 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