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자마자 직면한 두 집 살이의 현실

토요일 아침

by 글꽃

금요일 밤, 피자 한 조각에 스며든 온기와 ‘가족’이라는 착각 속에 잠시 행복했던 꿈은, 토요일 이른 아침, 차가운 현실의 목소리에 산산이 부서졌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아이들의 단잠을 깨우는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빨리 일어나서 밥 먹고 숙제해! 오늘 점심에 결혼식 가야 돼! 결혼식 갔다가 할머니 집 가서 자야 한다니까!" 신경질적인 외침이 주말 아침 공기를 갈랐다.


평소라면 주말 아침 아홉 시가 다 되어야 눈을 비비던 아이들은, 채 여덟 시도되지 않아 닦달하는 아빠의 소리에 일찌감치 깨어나야 했다. 나 역시 어젯밤 둘째를 품에 안고 번민하다 새벽녘에야 간신히 깊은 잠에 들었지만,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그의 고함 소리에 결국 깨어나고 말았다.


아이들은 엄마와 더 살을 비비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서 쉽사리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엄마와 끝말잇기를 계속하고 싶다며 속상해했다. 어젯밤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피자를 나눠 먹던 모습이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따뜻한 희망으로 다가왔을까. "엄마 아빠, 우리 다 같이 샌드위치 햄버거 놀이 해요!"라며 아빠를 오히려 엄마 쪽으로 초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들을 다그쳤다.


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의 날카로운 가시는 마침내 나에게까지 향했다.

“네가 아직 그러고 있으니까 애들이 안 나오잖아! 빨리 일어나! 네가 거기 앉아있으니까 애들이 숙제를 안 하잖아! 네가 숙제 안 시킬 거면 그냥 지금 빨리 집에 가!”

황당함과 서운함,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얼른 숙제하자"라고 함께 목소리를 모았다. 큰 아이는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았지만,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엄마와 더 있고 싶어 내가 앉아있던 소파와 안마의자에 와서 몸을 비비며 매달렸다. 남편은 둘째가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자 또다시 내게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며 남편의 지시에 동조하려 애썼다. "엄마가 공부 안 하면 집에 빨리 가야 하니까, 우리 빨리 숙제하고 엄마랑 놀자." 아이를 타일렀지만,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마지막까지 앉아 있던 거실의 안마의자에서도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로 갇혀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옷을 갈아입고, 이 집 밖으로 향했다.


남편은 이제야 아이들에게 "엄마 가는구나. 엄마한테 가서 인사하고 와"라고 말했다. 하지만 큰 아이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둘째는 울먹울먹 하며 현관 앞으로 나왔다. 나를 한 번 더 안아주는데,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걸 간신히 참는 얼굴이었다.


"엄마 완전히 갈 거 아니고, 잠깐 집 앞 병원 갔다 금방 다시 올게. 완전히 가지 않을게." 아이에게 약속하고 다시 품에 안아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듯했다.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가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의 그 공간에 더 이상 머무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애써 발길을 돌렸다.


아직 아픈 발목을 이끌고 향한 곳은 집 앞 신경외과였다. 아홉 시 오픈이라 아홉 시 전부터 도착해 기다렸다. 예약은 못 했지만, 대기해서라도 치료를 받고 다시 아이들 집에 잠깐 들를 예정이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한두 시간 뒤면 결혼식에 가야 할 것이다. 그전에 30분이라도, 내 발목 치료 후의 30분이라도, 꼭 다시 돌아가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다. 신경외과에서 기다리는 시간, 나는 아이들과 다시 만날 그 짧은 30분 만을 고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둘째는 아빠에게 항의한다. "아빠는 혼자서도 살 수 있잖아! 아빠가 나가서 살면 되잖아!" 남편은 "뭐라고? 지금 나보고 나가라는 소리야?"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더욱 좌불안석이 되었다. ‘일단은 지금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 집의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인 것 같은 연기를 잠깐씩 할 수 있을 뿐, 진정한 가족은 아니다. 큰 아이는 그걸 안다. 하지만 둘째는 아직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직도 엄마 아빠가 조금만 서로 웃고 잘해주면 다시 가족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엄마와 아빠 둘이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큰 혼란을 주는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철저하게 사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둥! 둥! 두두 두둥! 둥! 둥!”

물리치료 침대가 둥둥 거리며 내 온몸을 두드린다. 그와 함께 수많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도 내 온몸을 두드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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