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정실
어느덧 법원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가만있자.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변호사의 문자를 다시 찾아보다, 그제야 알았다.
오늘 일정은 두 시가 아니라, 두 시 반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정말 정신이 없나 보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
‘남편도 두시 반인지 몰랐었을까?’
남편에게 톡을 보낸다.
“나 도착했는데, 두시가 아니라 두 시 반이었네!”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거나
왜 잘못말해서 헷갈리게 했냐고 원망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알아.”
무심하게 알고 있었다고 답변이 왔다.
그럼 왜 내가 아까 두시라고 했을 때 두 시 반이라고 안 말해준 건지 이해가 안 되던 차에, 그가 한마디 더 덧붙인다.
“늦게 가는 것보다 좀 일찍 가는 게 낫잖아! “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이층, 제8호 조정실 앞에 도착했다.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먼저 온 사건이 아직 조정 중이라 했다.
나는 문 앞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이 공간에 내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낯선 온도와 공기에 마음을 천천히 맞춰보려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눈에 힘을 주었다.
울지 말자고 한 건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쏟아져버리면
마음이 너무 빨리 무너질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보았다.
점심 식사 후 양치하는 공무원들이 몇 명 있었다.
그 일상이 마치 또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나는 그 군중 속에 섞이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
다시 조정실 앞,
여전히 아무도 없는 의자에
혼자 앉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복도는 정숙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내 마음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휴대폰을 보면 고작 5분, 10분 정도뿐이었다.
법원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내 심장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아직은 법적으로 남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디야?”
“2층 8호 조정실 앞이야.”
내가 분명히 여러 번 말했다. 2층, 8호, 조정실. 그런데 그는 계속 헷갈려했다. 마치 다른 건물을 헤매고 있는 사람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또박또박 위치를 설명했다.
잠시 후, 복도 끝에서 그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코트를 펄럭이듯 입고, 손에는 메가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운동화 차림이라 그런지 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여기 있었네.”
그가 가까이 오며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응, 여기야. 아직 안 열렸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는 잠깐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이쁘게 하고 왔어?”
말끝에 손이 자연스럽게 내 치맛자락으로 내려왔다. 치맛단을 한 번, 두 번 스치듯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불편했지만, 이 자리에서 굳이 밀어내거나 소리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몸을 조금만 굳게 만들었다.
그는 그 말과 그 동작만 남기고 금방 다시 자기 세계로 돌아갔다. 곧 전화가 또 울렸고, 그는 통화에 몰두하며 복도 양쪽을 오가며 크게 이야기했다. 고요한 복도에 그의 업무 통화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조정실 문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고, 나는 이 낯선 자리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피검자처럼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가 도착했다. 남편은 여전히 복도 끝에서 통화 중이었고, 나는 변호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오늘 절차 오래 걸릴까요?”
“이미 합의서 제출하신 상태고, 큰 다툼이 없다고 돼 있어서요. 길어도 30분이면 끝날 거예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신분증을 안 가져온 것이 떠올라 황급히 물었다.
“근데 제가 오늘 신분증을 안 가져왔는데, 괜찮을까요?”
“네, 오늘은 신분 확인이 꼭 필요하지는 않아요. 그대로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혼 판결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이런 사소한 실수 하나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까 봐 불안했었다.
변호사 옆에 앉아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사이, 남편이 통화를 마치고 다시 다가와 내 오른편에 거의 붙다시피 앉았다. 몸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내 휴대폰 화면이 그의 시야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만한 거리였다. 나는 괜히 화면을 끄고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빨리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
이 사람과 이렇게 바짝 붙어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묘하게 더 불편하고 숨이 막혔다.
시계를 보니, 약속된 시간이 조금씩 넘고 있었다. 30분, 31분, 35분. 복도 끝에서 사람 하나가 나와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시고 일어섰다.
조정실 안은 생각보다 작았다. 책상 하나, 컴퓨터, 옆에 놓인 큰 모니터, 그리고 맞은편에 조정위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중년의 여성 조정위원이 판사 자리 같은 중앙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남성 조정위원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 여성이 판사인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그분은 조정위원이고, 판사는 뒤에 따로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변호사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이름이 적힌 팻말은 없었지만, 이미 각자의 자리는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여성 조정위원은 판사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제출했던 합의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조정 조서에 들어갈 문장을 새로 작성해 나갔다. 그 화면은 남편 쪽 옆에 놓인 큰 모니터로 그대로 띄워졌다. 누구라도 그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남편은 그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문장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눈으로 따라가며,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할 수 있는 표현이 보이면 바로 말을 끊었다.
“그렇게 쓰면 안 되죠. 그건 내가 다 부담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이 부분은 굳이 넣을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미 합의했잖아요. 빼도 되지 않나요?”
마치 계약서 협상 자리에 나온 사람처럼, 그는 조항 하나하나를 자기 기준으로 가르고 다듬었다. 중요한 건 더 자기에게 유리하게, 번거롭거나 책임이 더해질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이려는 태도였다.
내가 들었을 때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부분이 있으면, 나도 즉시 말을 보탰다.
“아니요, 그때 합의할 때는 그렇게 하기로 한 게 아니었어요.”
“그 표현은 제가 비용 전부를 부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닌 걸로 정리했죠.”
조정위원은 두 사람 말을 번갈아 들으며 문장을 수정했다.
이미 합의했다고 생각했던 내용들도
막상 글자로 옮기는 순간 다시 흔들렸다.
재산분할, 양육비, 양육권, 면접교섭.
큰 틀에서는 ‘서로 합의했다’고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이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실제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앞으로 수천만 원, 혹은 몇 년의 부담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처음 조정실에 들어와 앉았을 때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났다.
목소리가 떨릴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고,
눈물이 차오르지 않게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남편과의 치열한 공방이 오가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맞아, 이랬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말을 고르고,
어떤 상황에서 자기 이익을 어떻게 챙기는지
나는 이미 수년 동안 옆에서 보아온 사람이다.
지금 이 조정실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내가 떠나기로 결정한 그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 같았다.
우리는 거의 1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조정실 안에서 보냈다.
문장이 완성될수록, 조정위원의 손놀림이 빨라졌고,
남편의 개입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더 이상 바꿀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정위원이 마지막 문장을 입력하고 저장을 누른 뒤에야
판사를 호출했다.
문이 열리고 판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모두 일어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판사는 우리가 조금 전에 함께 검토한 조정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나는 문장의 내용보다
그 문장들이 우리 관계의 마지막 기록이 된다는 사실에 더 집중했다.
“이 내용대로 조정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판사가 먼저 나를 보았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했다.
“네.”
짧은 한 글자였지만,
수십 장의 서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대답이었다.
남편도 “네”라고 대답했다.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서류가 인쇄되고, 조정위원이 그것을 정리해 우리 쪽으로 돌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사인란에 이름을 적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던 날 도장 찍을 때보다
손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서류가 정리되자, 판사는 짧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실에서 회의가 끝났을 때도,
진료가 끝났을 때도,
상담이 끝났을 때도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
하지만 오늘 그 말은
한 가정의 형태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조정실 문을 나오는 순간,
복도 공기가 이상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건물, 같은 층, 같은 복도인데
이제 나는 다른 사람으로 걸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변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내려가는 길에
변호사가 말했다.
“오늘 두 분 다 나오셔서 하나하나 짚고 넘어간 게 정말 다행이에요. 남편분께서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많이 말씀하시려길래, 혼자 오셨으면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나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래요.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늘 계산이 빠른 사람이에요.”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더라고요. 오늘처럼 조정 이혼으로 정리하신 게 잘하신 선택 같아요.”
법원 정문 앞에 서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는 동안,
나는 방금까지 앉아 있었던 조정실 창문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결혼이 끝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겠지.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그 안에 올라탔다.
회사로 향하는 길,
창밖의 풍경은 여느 평일 오후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