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던 날

3 밥

by 글꽃

택시에서 내리고 회사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처리해야 할 업무를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마음도 같이 정돈될 거라고 믿었다.

그냥 일상 속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혼 판결’이라는 거대한 문장을 통과하고도, 일상은 그대로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회사 사람들과 웃으며 팀장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고, 결혼 유무와 상관없는 일상적인 농담을 섞어 대화를 이어가고, 내 업무를 다시 빠르게 속도감 있게 처리하면서도…

내 머릿속 어느 부분은 계속 텅 비어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 공기가 빠져나가듯 휑했다.

다른 건 다 할 수 있는데,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점심도 못 먹었고, 지금은 배가 고파야 하는 시간인데

먹을 생각만 하면 명치가 차갑게 굳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뭔가 씹을 상황이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모두에게

오늘 저녁, 시간 있냐고 물었다.

아무 의미 없는 가벼운 식사라도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모두 바빴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거나, 회식이 있거나, 약속이 있거나, 어딜 가야 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다 했다.

평소엔 흔히 들을 수 있는 거절 사유였는데,

오늘의 그것들은 유난히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열 번 가까이 거절당한 날이었다.

그런 날도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이혼한 날’이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아까 법원에서 전남편이 오늘 저녁 약속 있다고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모님. 집에 애들 아빠 없죠? 저 잠깐 애들 보러 갈까 하는데요.”

“사모님. 아빠 계세요. 지금 애들이랑 있어요.”

“아, 진짜요? 오늘 저녁 약속 있다고 했었는데 계속 있으려나요? “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네. 이모님. 그럼 오늘은 패스할게요! 수고하세요!”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 같은 날 전남편과 하나의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아무 때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가 참 부럽다.


힘차게 걷던 내 발은 순간 방향을 잃어,

정처 없이 떠돌며 배회했다.

그러다 생뚱맞게 다다른 곳은 동네 피부과였다.


예약도 없고, 관리받을 시기도 아니지만

그냥 이 허무하게 텅 빈 시간을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채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음식보다 필요했다.


“고객님. 이번에 너무 일찍 오신 것 같은데… 조금 빠른데요?”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애써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고 부탁했다.

“가능하면 그냥… 오늘 해주시면 좋겠어요.”


얼굴에 레이저가 닿았고,

따끔하고, 뜨겁고, 눈물이 났다.

아파서 난 눈물인지, 서러워서 난 눈물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타닥타닥

얼굴이 타는 소리

그리고 뿌연 냄새

나는 그렇게 오늘의 나를 태우고 있었다.


관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자

배고픔이 다시 밀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마지막 기대처럼

동네 당근 모임에 글을 올렸다.

누구라도 같이 저녁 먹을 수 있는지.


하지만 그마저도 대답이 없었다.

아. 오늘은 누구도 나의 저녁을 함께해 주지 않는 날이구나.


결국 그렇게 빈속으로 돌아온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 가는 순간

빈방의 한기와 마주한다.


옷을 벗고 아무 말 없이 눕자

그때서야 눈물이 터졌다.

낮에는 조정실에서도 버텨냈고,

회사에서도 버텨냈고,

피부과에서도 버텼는데…


결국 싸늘한 빈 집에서

혼자 울고 있다.


이혼이라는 행위가 끝난 게 아니라

삶에서 어떤 ‘형태’가 빠져나갔다는 실감이

나를 덮친다.


한참을 울다가 생각나는 대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허전해서, 슬퍼서, 그냥 말하고 싶어서.


뚜르르 뚜르르

오늘따라 다들 바쁜가 보다.


알고 있다.

내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줄 누군가를.

하지만 그분들에게는 오늘 차마 연락하지 못하겠다.

그건 너무 불효일 것 같아서.


그러다 가까스로 통화된 한 친구는 무심히 툭 던진다.

“잘된 거 아니야? 원하는 대로 됐는데 뭐가 문제야?”

“잘되긴 뭐가 잘돼! 나도 사실은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길 꿈꿨었다고! 내 어릴 적 장래희망이 뭐였는지 알아? 바로 현모양처야!! 그리고 금융 재산 분할도 애들 양육권도 다 포기하고 몸만 달랑 빠져나온 이혼이 뭐가 좋겠어? “

“그래도 너 그동안 맨날 힘들어했었잖아. 그런 남편이랑 이 정도로 깔끔하게 헤어졌으니 잘된 거지! 애들도 언제든 보러 와도 된다고 하고! 이제 혼자만 잘 살면 되잖아! 나라면 속이 다 시원할 거 같은데 왜! “

“너 이혼해 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마! 네가 뭘 안다고 그래! “


그렇게 어렵게 연결된 통화는

빈속을 요란하게 휘젓고 떠나갔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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