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오늘 아침은 뜻밖의 순간으로 시작되었다.
늦잠을 자려던 내 계획보다 먼저 울린 전화벨.
화면에는 전 남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심장이 순간 내려앉았지만, 받아보니 통화의 주인공은 우진이었다.
“아빠, 엄마 집 근처 붕어빵! 그거 사가자! 그거 진짜 맛있어!”
지난주 내가 사줬던 그 평범한 붕어빵을
우진이는 ‘엄마 집 근처 붕어빵’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형과 아빠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전 남편은 내 집 근처 지리를 몰라
붕어빵 포장마차 위치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것이었다.
나는 잠결에 기억을 더듬어 위치를 알려주었다.
뒤에서는 우진이 목소리가 흥분으로 튀었다.
“거기 붕어빵 진짜 맛있어! 엄마랑 먹은 거!”
붕어빵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엄마랑 함께 먹은 기억’이 맛을 특별하게 만든 것.
그 사실이 마음을 쿡 찔렀다.
뿌듯함과 짠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늘 가려 했던 여의도 더현대 크리스마스 팝업스토어 생각이 났다.
친구에게 “우리 지금 가면 오픈런 시간 맞출 수 있어”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부드럽게 단호했다.
“미안…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못 갈 것 같아.”
조금 아쉬웠지만, 그 말이 내게 뜻밖의 휴식을 허락했다.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들며 스르르 잠에 빠졌다.
오랜만에 찾은 깊은 단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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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눈을 뜨고
방 안을 정리했다.
빨래를 돌리고 책상을 정리하고
사과 하나를 깎아 늦은 아침을 대신했다.
집 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함께 밝아졌다.
집을 정돈하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을 정돈하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이 정도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다.’
그 작은 감각이 방 안에서 천천히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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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꿈, 그림 그리기를 드디어 시작하기로 했다.
두 달 전 가입만 해두고 못 갔던 드로잉 모임이 때마침 오후 늦게 집 근처에서 있었다.
아티제 카페 2층에 올라가니
각자의 세계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패드로 이모티콘을 그리는 사람,
장원영 사진을 보고 사실적으로 스케치하는 사람,
해바라기를 연필로 정성 들여 색칠하는 사람,
2026년 캐릭터 달력을 만드는 사람까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상상들이 동시에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작은 여우 캐릭터를 꺼내
스케치북에 조심스레 그려본다.
선이 서툴러도 괜찮았다.
지우고,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이모티콘을
서진이와 우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달력을 만들어
내가 방문하는 날마다
엄마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면접교섭이라는 차가운 말 대신
아이와 내가 만나는 날을
귀여운 캐릭터로 표시해 주는 것.
그건 우리 사이의 작고 따뜻한 약속이 될 것 같다.
⸻
모임을 마치고
근처 아이패드 매장으로 향했다.
점원의 주로 무슨 용도로 사용할 예정인지 묻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드로잉이요!”
화면을 스칠 때마다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되살아났다.
가격은 숨이 멈출 만큼 비쌌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이런 생각이었다.
‘이제는… 해도 되는구나.
이제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내 의지대로 해도 되는구나.’
전 남편과 살던 시절,
내 취미는 늘 “왜 그렇게 늘 쓸데없는 것만 하려고 하냐.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살림이나 육아에 더 신경 쓰도록 해라! 그게 무슨 돈이나 되냐.”는 말에 막혔고, 나의 욕망들은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한 채 늘 뒤로 밀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양육 이혼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 아래에서
나는 오히려 기묘한 자유를 얻었다.
고가의 아이패드 프로를 당장 사지는 못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언젠가는 내 그림들이 아이패드 안에서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
오는 주에는 지방으로 3박 4일간 박람회 출장이 있다.
그래도 약속대로 주중 하루는 무조건 우진이를 보러 갈 것이다.
“엄마 없으면 화장실도 안 갈래”라고 말했던 그 마음을
나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 괜찮아, 이젠 이렇게 수시로 안 와도 돼”라고 말하는 날까지
주중 한 번, 주말 한 번의 방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모두 나를 다시 채우는 데 사용할 것이다.
이혼 이후
내 삶 구석구석 빈칸이 많아졌지만
그 빈칸이 은근한 자유가 된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내가 다시 그리고 싶은 모든 것들의 시작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드로잉, 등산, 바이올린, 기타, 드럼,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단편 영화 모임.
결혼 생활 내내 말할 용기조차 없던 꿈들이
이혼 후 조용히 숨을 얻기 시작했다.
원치 않은 이혼이었지만
오늘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오늘 스케치북 위에 그린 이 작은 여우는
그 모든 사실을 새삼 알려준 첫 선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스케치북의 첫 장 위에 적었다.
“다시, 나를 그리기 시작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