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않고도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가위

by 글꽃

어젯밤 나는 꿈속에서 끝없이 울고 있었다.

깼다고 생각하면 또 꿈이었고, 꿈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같은 장면으로 돌아갔다. 나는 계속 우진이를 찾아 뛰어다녔다. 어디선가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손을 뻗으면 닿지 않았다. 문 하나,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가까운데도, 끝내 만나지 못했다.


몸은 침대에 깊이 박혀 있는데 마음만 서늘한 복도를 달리는 느낌. 가위눌림과도 비슷한 그 감각 속에서, 나는 집요하리만큼 아이에게 가닿으려 애쓰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다가 깨고, 깨서 울다 다시 잠들고, 다시 꿈속에서 울었다.


왜 하필 지금 이런 꿈을 꾼 걸까.


나는 지금 청주에 와 있다. 공공혁신박람회 총책임자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준비하느라 화요일 오후에 먼저 내려왔다. 화요일 밤부터 금요일 밤까지, 나흘 동안 나는 이 낯선 도시의 호텔에 혼자 머문다.


출장 전날인 월요일 밤, 아이들을 보고 오고 싶었다. 그저 잠들기 전에 얼굴 한 번만 보고 싶었다. 그런데 박람회 준비 때문에 밤 9시 반까지 야근을 했고, 결국 집에 들르지 못한 채 그대로 짐만 싸서 출장을 떠났다.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가면 이미 하늘은 까맣게 젖어 있을 것이고, 그날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긴 어렵겠지. 토요일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몸도 영 편치 않다. 몸이 약해지자 마음은 숨기고 있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슬그머니 꺼내 들었다. 집에 있을 때는, 비록 한집에 살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최소한의 위안이 있었다. 청주에 내려와 보니 그 위안마저도 사라졌다. 물리적인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길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비양육자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젯밤 꿈속의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내 품 안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 어떻게든 가닿고 싶은 사람, 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움은 시간을 먹어도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울며 깨어난 아침, 사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에도 일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몸은 무거웠고, 가슴 안쪽에는 꿈의 잔해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부스로 향했다.


전시품의 위치를 확인하고, 운영 인력을 맞추고, 동선을 점검하고, 관람객에게는 밝은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몇 시간 전 꿈속에서 울던 얼굴은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고, “총책임자”라는 얼굴을 꺼내 쓰는 일. 어른의 삶이란, 어쩌면 이 얼굴들을 바꿔 끼우며 버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지 못한 채 청주에 내려온 것도, 몸이 아픈데도 부스로 나간 것도, 결국은 ‘일이 먼저’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돌아온 올해의 평가는 아이러닉 하게도 최악이었다.


“이런 점수를 실제로 받을 수도 있는 거군요?”

2.0이라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심장 박동이 급격히 빨라지고 손이 저려왔다.

“회사는 원래 냉정한 겁니다. “

내가 쏟은 시간과 에너지, 아이들을 미루면서까지 일에 우선순위를 둔 날들이, 이 숫자 뒤편으로 한꺼번에 쓸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부족한 사람인가?’

‘정말 2.0점짜리 퍼포먼스밖에 못 한 걸까?’

‘아무리 육아휴직을 연중에 다녀왔다고 해도 그렇지..!!’


문제는 그 숫자가 단지 “올해의 성과”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라는 사람 전체가 작게 축소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 상처를 안고 청주에 내려와 있었고, 그 미묘한 상실감이 어젯밤 꿈에서 울음으로 번역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가닿지 못하는 장면과, 내 노력이 닿지 못한 자리.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은근히 겹쳐져 있었다.


그런 내 앞에, 오늘 저녁 작은 숨구멍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편백찜 집에서 HR-D에 근무하는 김 매니저님을 만났다.


그분은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선배였다.

삼성에서 일하다 여러 회사를 거쳐 지금 회사에 와서, 2007년부터 인재개발과 교육을 맡아온 베테랑.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건, 그분도 한때 유방암으로 1년 동안 회사에서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힘든 치료를 버텨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승진 대상자 명단에서 본인 이름이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분은 그 일을 얘기하면서도 담담했다. 억울함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웃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 담담함은 결코 처음부터 가진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꺾임과 수용을 지나야 겨우 만들어지는 표정이라는 걸.


김 매니저님은 내 이야기도 조용히 들어주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마음, 청주까지 혼자 출장 와서 며칠째 호텔에서 버티는 외로움, 몸이 아픈데도 일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 그리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까지.


말을 다 듣고 난 뒤 그분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평가는 숫자예요. 물론 영향은 크죠. 하지만 숫자가 사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과정으로 여기까지 왔는지까지는 그 안에 안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은 해야 해요.

싸우자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일해왔고, 이 부분은 다시 봐줬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하루 동안 머릿속을 떠돌던 문장이 또렷하게 형태를 갖추었다.


거절하지 않고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지금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건 그거구나!!


나는 싸우고 싶은 게 아니다.

누군가를 몰아붙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일해온 시간과

내가 감당해 온 책임과

내가 견뎌온 마음의 무게가

불합당한 숫자 하나로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바람을,

남을 상처 내지 않는 방식으로,

회사와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게,

이 나이에 다시 배워야 하는 새로운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거절하지 않고도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는 이런 평가를 받기에는 더 많이 해왔다”라고 조용히 짚어볼 수 있는 용기.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손을 뻗어도 가닿지 못하는 존재를 향해 절망하고,

울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머물렀다.


하지만 오늘 밤, 편백찜 김이 희미하게 올라오던 그 자리에서 나는 조금 다른 내가 되는 연습을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이고,

일을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해내려 애쓰는 사람이고,

때때로 숫자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거절하지 않고도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소멸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 밤의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용기 한 조각이 되어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긴 꿈과 청주의 며칠은

조금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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