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를 뭐라고 부를까
이혼을 하면 관계가 끝나는 것 같지만,
둘 사이에 아이가 있는 이혼은 ‘관계의 종류가 바뀌는 일’에 가깝다.
부부는 사라졌지만 부모라는 역할은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예상치 못한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오늘 내가 다시 마주한 충격은
크게 다툰 일도, 상처되는 말도 아니었다.
단지 전 남편이 보낸 카톡 속 한 단어였다.
“부모님께 주말에 애들이 너랑 여행 간다고 말해놔서…”
그 문장에서 가장 크게 보인 단어는
여행도, 주말도, 아이들도 아니었다.
바로 “너”라는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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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서 ‘너’라는 호칭은
결혼 생활 동안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연상이었고,
서로를 ‘자기’나 ‘여보’라고 불러왔고
‘너’라는 호칭은
크게 싸울 때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그래서 이혼 후 처음 그 말을 보았을 때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 한 단어가
나와 그의 관계에 생긴 새로운 거리를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어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해하진 말아야 한다.
그 단어가 나를 서운하게 했거나
기분 나쁘게 만들었던 건 아니다.
감정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어떤 언어로 서로를 불러야 하는 관계가 됐을까?
라는 질문이 갑작스레 스쳐 지나간 것이다.
우린 이제 정말 ‘너’라고 불러야 되는 사이가 되는 걸까?
아이들은 우리가 서로를 이렇게 부르는 걸 듣고
어떤 마음이 될까?
부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타인도 아닌 이 관계에서
호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모든 질문이
단 한 줄의 카톡 속에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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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고민을 한다.
전 배우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 이름? 어색하다.
• 씨? 너무 딱딱하다.
• 너? 감정의 온도가 너무 직설적이다.
• 여보/자기? 과거의 잔상이 지나치게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연스러울까?
결국 우리는 부모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관계의 중심에는 이제
‘너와 나’가 아니라
‘아이’가 서 있다.
호칭도 아이 중심으로 다시 맞추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참. 호칭만 정해두려고. 서로 ‘너’라고 부르면 가족이나 아이들이 들을 때도 어색할 것 같아서.
앞으로 나는 ‘당신’ 또는 ‘서진 아빠’라고 부를게.
당신도 나를 당신/서진 엄마/애들 엄마 중
그때그때 편한 호칭으로 불러주면 좋겠어.
그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 “
이 말에는 책임도, 배려도, 새로운 거리도 담겨 있었다.
이제 우리는 부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언어 없이 관계를 이어갈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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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돌아온 답장은 단 세 글자.
“애엄마”
그렇지. 이게 그의 스타일이지. 나는 말을 좀 더 이어갔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땐 ‘애들 엄마’로 하구.
집에서 애들 들을땐 ‘서진엄마’나 ‘당신’으로 부름 될 듯“
그는 일단 내 제안을 얼버무린다.
“‘당신’ 좀 이상한데. “
난 다시 한번 호칭 정리를 유쾌한 방식으로 독려해 본다.
“그럼 서로 부를 땐? 뭐라 불러? ‘애아빠!’ 이렇게 불러? ㅋㅋㅋ ‘서진아빠’ 이렇게 부를까 그냥? “
“이름 부르자. xx 씨. ㅇㅇ씨. “
“애들이 듣기 이상할 거 같은데 괜찮겠어? 그건 아이들 앞에서 너무 어색해. 차라리 ‘애엄마‘나 ’ 서진이 아빠’가 자연스러워. 그걸로 하자.
괜찮다면 난 필요할 땐 ‘당신’도 섞어 쓸게. “
“난 알아서 부를게.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 “
“‘너’라고만 하지 말아 ㅋㅋㅋ“
“응”
나는 그의 무성의한 단답들 사이를 무심한 척 비집고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이혼 후 호칭에 대한 경계를 만들어냈다.
관계가 대개 그렇다.
한 사람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단순하게 반응한다.
그 간극이 클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관계가 오히려 쉽게 정리될 때도 있다.
오늘은 후자였다.
큰 갈등이나 감정 소모 없이,
우리의 새로운 호칭에 대한 기본적인 선과 범위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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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자들의 호칭은
연인처럼 달콤할 필요도 없고
부부처럼 공고할 필요도 없고
타인처럼 냉정할 필요도 없다.
단지 아이들이 들었을 때 위화감 없이 편안한 호칭,
그것이면 충분하다.
“애들 아빠.”
“서진이 엄마.”
이 호칭들은
과거를 꺼내지도 않고,
감정을 흔들지도 않으며,
역할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내고
이혼 후의 새로운 관계를 지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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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직후의 우리는
사랑도 미움도 아닌
책임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낯선 관계,
새로운 언어,
변화된 거리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다시 배우는 것은
아이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이다.
호칭은 그 시작점일 뿐이고,
그 작은 단어 하나가
관계의 온도를 만들고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며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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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부를 끝냈지만,
한부모로서의 양육을 각자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지에서부터 그려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