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의 끝을 잡고
토요일 밤, 자정이 지나면 집은 유난히 고요해진다.
우진이를 면접교섭으로 만나는 날이면 늘 그렇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밤의 끝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 한다.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시간을 늘린다.
불을 끄고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지만, 우진이는 나를 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마음 깊은 이야기를 할 때 종종 그렇게 등을 보인다. 얼굴을 마주 보면 마음이 더 흔들릴까 봐, 혹은 눈물이 들킬까 봐.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은 채, 그러나 같은 밤 속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왜 나간 거야?”
우진이의 질문은 조심스러웠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꼭 이혼해야만 했어?”
“그냥 같이 살 수는 정말 없는 거야?”
아이의 질문은 어른의 질문보다 훨씬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깊다.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며 숨을 고르고, 우리가 함께 살던 시간을 떠올렸다.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또 전처럼 엄마 아빠가 싸우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우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맨날 싸웠던 건 아니잖아.”
그 말이 내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아이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좋았던 날들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싸움의 구조를 이해하기보다는 함께 웃던 장면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 말이 아프면서도 동시에 고마웠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우진이가 또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여름처럼 캠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숙제할 시간도 부족하다며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말하면서 울먹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엄마가 데리고 갈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우진이는 다시 말했다.
“아빠랑 형도 같이 가고 싶어.”
그 말은 단순히 캠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이가 말하고 싶은 방점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다 같이.”
엄마와 아빠와 형이 함께 있는 시간.
그것이 아이에게는 여전히 꿈이고 소망이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진이가 되물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아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우진이가 다시 말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맨날 화냈잖아.
소리 지르고, 말로 때리고.
캠핑 가서도 그랬잖아. 나도 다 기억해.”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맞아. 아빠가 큰소리로 그렇게 하면 엄마도 사실 많이 무서웠어. 그래서 힘들었어.”
그리고 말했다.
“아빠가 처음에는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살면서 점점 강퍅해지고 무서워졌어.”
우진이는 물었다.
“왜 그렇게 된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상황이 달라지면서 아빠의 사랑도 변한 것 같아. 아빠 입장에서는 엄마라는 사람이 예전처럼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거지. 그래서 엄마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다 아랫사람처럼 대하게 된 거야.”
“아빠가 돈도 더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부터는 엄마를 하대하는 분위기가 있었어. 엄마가 복종하지 않으면 싸우는 상황이었고.”
“근데 엄마는 싸우는 걸 싫어하고 아빠보다 싸움도 약해서 싸우면 항상 졌어.”
나는 계속 말했다.
“엄마가 아빠랑 계속 살려면 두 가지 선택이 있었어.
아빠의 시녀처럼 평생 참고 살거나,
아니면 맨날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하거나.”
“둘 다 엄마에게는 맞는 방식이 아니었어. 그래도 엄마는 14년을 버텼어.”
나는 잠시 멈췄다.
“사람이 90세까지 산다고 치면 앞으로 44년을 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그걸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
“그래서 나오게 된 거야.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먼저 나가라고 했어. 자신의 말을 잘 안 들을 거면 차라리 나가라고 했거든.”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진이는 아빠가 힘들고 싫어도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성인이 돼서 얼마든지 따로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엄마는 그럴 수 없어. 부부는 이혼하지 않으면 평생 같이 살아야 하거든.”
“엄마도 몇 년만 더 버티라면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44년은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
아빠도 잘할 때도 있었잖아.
어쨌든 지금은 우진이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잖아.”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복잡했다. 하지만 아이 마음속에서 아빠가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우진이는 조용히 말했다.
“먹여주지도 재워주지도 않아.”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주말에 한 번쯤 밥 차려주고 숙제하라고만 해.”
그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서운함이 있었다.
아이는 아빠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 마음속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었을 것이다.
아빠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아빠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나는 뒤에서 우진이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우진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만,
아주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아이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만,
아주 조용히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같은 밤 같은 마음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진이의 숨이 천천히 고르게 바뀌었다.
아이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 등을 안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이 컸다.
우진이도,
그리고 나도.
예전에는 무너지면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같이 울 수 있는 밤을 지나며
조금씩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