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점령해버린 그 이름 냥이~
장기간 유럽여행을 하던 중 짧은 일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에 들르게 되었다. 할슈타트는 역사적 관점에선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있어 유명하지만 사람들이 이 곳을 찾도록 하는 것은 다름아닌 동화 속 장면과 같은 호수 위에 비친 마을 풍경이다. 마을 앞쪽의 맑은 호수, 뒤쪽의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풍경이 일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할슈타트’라는 이름은 모르지만 호수에 비친 마을 사진은 이미 달력이나 잡지를 통해 많이 접해왔을 것이다. 간단히 소금광산을 구경한 후 마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산 꼭대기부터 출발하여 산기슭에 위치한 집들과 골목골목을 산책하듯 내려오면서 보게 된, 산과 호수로 숨겨진 할슈타트의 모습은 과연 조개 속의 진주와 같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좁고 구불구불한 할슈타트의 골목을 걸으면서 골목대장 냥이가 길을 막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자신있게 막아서며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자신은 이곳의 골목대장이니 이 길을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라는 모습 같았다. 잠시 그와의 대치, 내 마음 속에는…
‘그를 지금 쫓아내면 무리로 몰려올 수 있다?, 이분은 여기서 사시는 거주냥인데, 괜히 이 곳에서 쉬고 있는 냥이님을 건드리면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다, 통행료는 유로인가?’
그러던 중 골목대장 냥이님께서는 오랫동안 여행한 나에게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것을 알았는지, 난간 위로 오르시더니 나를 보고 썩소를 한 번 날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난관 위에서 할슈타트의 전경을 보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을의 파수꾼 같았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호수 위의 마을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할슈타트라는 아기자기한 마을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하고 기뻐 날 뛰는, 우리 사람들을 재미있게 생각할 것이다. 마치 동물원에서 우리가 동물들을 바라보며 ‘와! 동물이다.’라고 생각하듯, 그는 이 높은 곳에서 자신의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할슈타트의 모든 일들을 관망한다. 냥이를 계속 관찰하고 싶었고 할슈타트의 내면을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기 때문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였기에 숙소로 향했다. 산 속 마을이기 때문인지 빨리 저물어가는 햇빛이 그저 야속할 따름이었다.
이후 나는 동유럽과 영국을 돌아본 후 석유와 어업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스타방게르(Stavanger)로 향하였다.
스타방게르에는 지역산업 기반인 노르웨이 석유박물관, 통조림박물관 등 유명한 관광지들이 많았지만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구 시가지인 감라 스타방게르(Gamle Stavanger)였다. 감라 스타방게르 골목에 다다르자 집 앞 계단에 앉아 따스한 오후 햇살을 즐기시는 할아버지가 나를 반겨주셨고, 그 뒤로 햐얀색 집들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바람이 많고 물이 깨끗한 이 곳이 얼마나 청정의 도시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스 큐브처럼 보이는 하얀 집들을 가로지르다 보니 어느 덧 마을 중심에 있는 우물가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 곳에선 길냥이 한마리가 벤치 아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길냥이를 무시한 채 다시 발걸음을 돌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노르웨이 아가씨들, 내리막길 옆에 벽을 세우고 좁은 공간까지 활용하며 꽃 밭을 만들고 계신 아저씨, 자전거를 끌며 골목을 가로지르는 청년 등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노르웨이의 하얀 전통가옥과 더불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마주친 우물가. 이 지역 터줏대감은 아직도 누워있었다.
할아버지는 계단에 앉아계시고, 아저씨는 꽃밭을 만들고 계시는데, 이 분께서는 벤치 그늘 아래에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계셨다. 토실토실해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잤으면…’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고 바닥에 누워있었지만 스타방게르가 무공해 도시라 그런지 복실복실한 그의 털은 매우 깔끔했다. 내가 주위를 돌면서 사진을 찍어도 무관심.
아마 감라 스타방게르에서 제일 팔자 좋은 녀석인 것 같다. 가방에 먹을 것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한 체,
‘잘 먹고 잘 살아라~!’
한마디 해주고 감라 스타방게르를 빠져나왔다.
고모와 함께 여행한 독일의 작은 마을 마르바흐(Marbach am Neckar)에서도 그들은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지.’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마르바흐는 아기자기한 독일식 집들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골목의 출발점에서는 동화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여든이 되신 고모께서는 그 앞의 파란벤치에서 잠시 쉬시고 계셨다. 이제 골목을 관통하여 마을을 돌아보려고 고모가 일어나신 찰나, 길냥이 님께서 다시 벤치를 차지하고 앉으셨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전이네. 상전이야. 그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곳 터줏대감인 냥이님께 비켜드려야지.’
마을의 터줏대감인 그들을 생각하며 여행 내내 웃었다. 풍경 좋은 전망대 난간, 마을 중앙 우물가, 골목의 가장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벤치 위… 자세히 설명할 필요없이 그들은 그 곳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호스텔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만큼이나 여행지에서 많이 마주친 길냥이들은 나홀로 여행 속 촉촉하게 내려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호스텔의 친구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길냥이님들은 그 지역 터줏대감이시니…그들만 찾아다니면 된다. 적어도 그들 곁에선 그 도시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길냥이가 있는 곳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가장 좋은 포토존이 있다. 장기간 여러 나라를 돌아본 후 사진을 정리하며 알게 된 하나의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