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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Jun 08. 2019

내 삶에 자리 잡은 프레임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프레임 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의사를 결정한다. 자신이 프레임 내에서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인식하더라도 어떠한 프레임으로 의사를 결정하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더욱 적다.”


1. 늦은 발견


내가 자신에게 프레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마친 후였다. 삼성전자 과장에서 회사를 그만둔 후 여행을 시작할 때, 내 생각에는 대한민국 제조 대기업 과장의 프레임이 있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 수준 등 여러 좋은 조건들이 있음에도 잔특근이 비교적 많고 근무 강도가 높아 그때 장기간의 여행을 결심하며 계획한 기준은 두가지였다.


‘첫 번째, 야근이 적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이 발달한 선진국.’ 


보통 유럽을 간다면 프랑스, 스페인, 로마 등 화려하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유적지와 도시의 현장을 보러 가는 것인데, 나의 두 가지 기준은 장학금 받으며 공부하고 졸업하자 회사에 취직하고 그냥 하루하루 일하며 소박한 행복을 추구했던 대한민국 제조 대기업 과장으로서의 생각의 프레임 내에서 정한 것이었다. 여행을 한창 다니면서도 중간중간 친구들의 합류로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를 다녀왔던 것이지 대부분의 시간을 북유럽과 독일에서 보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칠 즈음에 목적은 단 하나였다.     


“빨리 이 여행을 마치고 북유럽/독일계 회사에 취직하는 것.”    


일단, 복지국가/제조업이라는 색안경이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후에는 유럽여행 중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했던 프레임은 약 8개월이 넘는 미국 생활에서 깨지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하자 소비재(특히 맥주)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으며 비교적 낮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꺼리들이 많았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주류, 휘발유, 자동차 등의 가격이 상당히 높다. 북유럽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환상도 잠시 미국의 의료제도와 높게 청구되는 의료수가를 보고 적잖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의료제도에 대한 실망은 의료비가 무상인 북유럽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의료체계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니 의사들이 준공무원이기에 치료를 받으려면 3~4주 정도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1년 8개월간의 여행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을 만났을 때 모두가 한번 쯤은 물어보았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가장 좋은 나라가 어디냐고. 나는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나처럼 재밌게 살기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특별한 지병이 없음에도) 병원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고.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여행 초기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조 대기업 과장이 흔히 가질만한 프레임 속에 나타난 ‘빨리 한국 돌아가서 북유럽/독일계 회사에 취직해서 다시 나간다.’는 목적은 이제는 지난 프레임과 더불어 묻어버리기로 했다.        



 

2. 우리 모두에게 스며든 프레임


나에게 또 하나의 프레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마친 후 사진을 정리하면서였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풍경, 건물, 음식을 사진으로 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지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바로 인스타 프레임이다.     


여행을 한창 하던 도중 오로라를 보러 스웨덴 북극권 넘어 아비스코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니클라스라는 산장 직원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은 나에게 인스타의 좋은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난 인스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속에 있는 많은 풍경, 도시, 길, 음식, 사물 등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자리잡게 된 버릇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스타 프레임> 


사물을 수직으로 찍었고, 휴대폰/카메라 등은 어떠한 형태로 마음껏 찍더라도 마지막 세 번의 샷은 수직으로 세워서 찍었다. 심지어는 음식 사진도 수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었으며 모든 사진은 정사각형에 완벽이 들어가도록 찍어야 했다.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항상 1:1. 수직과 수평, 대칭과 반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사각형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로와 세로 비율 1:1이라는 프레임 속에 갖혀있는 것 같다. 휴대폰, 카메라를 뉘어서 찍더라도 마지막 한두장 정도는 평소보다 뒤로 가서 세로로 세운 후 모든 피사체를 정사각형 안에 들어가도록 찍는다. 이렇듯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행동, 습관까지 변화시킨다.     




* 찍다보니 나도 모르게 발견하게 된 사진들.

성당, 타워 등의 첨탑 중앙 아래에서 상단을 올려다 보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1. Berliner Dom_Berlin, Germany

2. St. Hedwigs-Kathedrale_Berlin, Germany

3. Stuttgart Stadtbibliothek_Stuttgart, Germany

4. Tour Eiffel_Paris, France

5. Dom zu Salzburg_ Salzburg, Austria

6. Kiruna Kyrka_Kiruna, Sweden_Over the Arctic Circle    


마지막 사진은 스웨덴 북극권 넘어 키루나에서 찍은 사진인데 내가 북극권 넘어 교회에 방문해서 이런 사진까지 찍었는지 그땐 몰랐다.



이러한 행동을 하루아침에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에게 프레임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간다. 그 가운데 습관과 패턴들이 있겠지만 인식하지 못 한다. 서두에도 이야기했듯이 인식은 하더라도 그것이 어떠한 프레임으로부터 기인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더 소수일 것이다. 방법은 지식, 여행, 대인관계 등 외부적인 요인 조금씩 확장하여 본인은 변화시키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방법도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반성과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방법이 될 것이다.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에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이 어떠한 프레임으로부터 발생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반성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일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내가 인식하게 된 대한민국 제조대기업 과장으로서의 프레임으로부터 만들어진 목적인 북유럽과 복지국가에 대한 갈망은 이제 사라졌다. 인스타프레임. 나는 인식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어떠한 프레임에 따라 움직이는지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당분간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찍는 사진의 패턴은 지난 몇 년 그리고 지금과 동일할 것이다. 내가 SNS를 하는 한 나는 계속 그 프레임에 의해 만들어진 패턴 속에서 사진을 남길 것이다. 인스타가 없어지지 않는한 계속될 것이다. 프레임을 인식함에도 그 안에 갇힌 것이다.

      

* 참고로 일부 사진가들은 음식과 사물을 수직으로 찍는 인스타 방식을 상당히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대중성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인스타그램 특유의 프레임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방법을 고수하겠지만 지금 대세가 SNS를 활용한 마케팅이고 사진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방법 역시 인스타그램이기 때문에 인스타프레임은 쉽게 내려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인스타프레임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하길 응원해 본다. 일단, 난 지금으로선 인스타프레임 속에서 생활해보는 것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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