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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May 14. 2020

우리 집 갈비찜

우리 집에는 대대손손 내려오는 갈비찜이 있습니다. 외할머니 전부터 어머니까지 내려오는 갈비찜은 설과 추석 연휴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7남매 중 장남이셨고 어머니께서는 맏며느리셨기에 어릴 적부터 친척들이 설과 추석이 되면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친척 맞이를 위한 준비를 하시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준비하셨던 요리 중 최고는 갈비찜이었습니다. 친척들이 반찬을 한가지씩 준비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갈비찜은 항상 요리들 중앙에 위치하였습니다. 처음 다른 반찬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간장에 졸인 두툼한 고기와 무가 듬뿍 들어있는 갈비찜 그릇이 밥상에 도착하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잡습니다. 적절하게 달고 짭짤한 맛은 흰쌀밥과 그럭저럭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시간보다 더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 상에 올릴 때의 고기와 무는 간장에 살짝 졸인 상태였기에 고기와 무의 겉에만 간이 배어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갈비찜을 하루 정도 지나 먹게 되면 갈비와 무에 간장이 온전히 스며들어 더욱 진한 갈비찜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교하고 집에 돌아올 때 문밖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릴 적에는 그만큼 쉽게 배가 고팠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자라나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흔이 넘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어 주로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계시면서 옛날 일들을 말씀하시고 후회하시기도 기뻐하시기도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실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식사 시간이었는데요. 어머니께서는 푹 졸인 갈비찜 국물에 밥을 비벼 주셨습니다. 으깬 무와 많이 졸였기 때문에 이미 부스러진 고기 가루들이 할머니께서 드시기에 편했던 기억입니다.      


어릴 때 단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중국 속담에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죠. 할머니가 달달한 갈비찜을 좋아하셨던 것이 한편으로는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의 갈비찜은 조카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고기의 담백한 맛과 달달한 국물은 유치원생 조카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저의 할머니처럼 밥에 비벼 먹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웬만한 한정식 식당에서 먹는 갈비찜보다 우리집 갈비찜이 더 맛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작년 생일(12월)과 올해 어버이 날에 조카에게서 축하와 감사의 카드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벽장에 붙여 놓으신 조카의 카드

조카가 직접 만들고 그리고 쓴 카드. 

목적은 어머니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인지 아니면 갈비찜인지····.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에는 웃음만이 가득합니다.      


지금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에 계시고 삼촌과 고모들께서는 모두 나이가 드셨기 때문에 친척들은 더이상 우리 집에서 모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사촌 형, 동생들에게서 어머니의 갈비찜 이야기는 추억 속 화제로 오르내립니다.     


가족과 공유할 수 있고 그 가족을 기억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니 기억할 수 있는 수단 중에는 시각과 청각적인 것 외에도 후각이나 미각적인 것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네요.      


모든 가족들에게 이러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요리가 하나 정도는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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