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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May 15. 2020

외적 환경을 바꾸어도 쉽게 자리 잡지 않는 내면적 자유

나는 회사 다닐 때 제법 일을 잘했다. 주 업무였던 기업교육, 특히 입문교육에서 부각을 나타냈는데, 이는 내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획기적인 기획보다는 체계적인 매뉴얼과 시스템을 만들고 정해진 규정 내에서 훈련을 잘 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성과주의적인 문화와 최고를 지향하는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덕분에 나 자신도 그런 문화 속에서 업무를 더욱 프로답게 익힐 수 있었다. 조금 더 꼼꼼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업무 마무리 전에 네다섯 번 확인은 기본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물려준 지 오래된 업무들도 담당자가 준비를 완료하면 파트장님께서는 세팅 등 외형적인 부분에 관하여서는 나에게 다시 확인토록 하셨다. 부서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퇴근은 늦어졌다. 오전 7시 10분까지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한 후 12시간이 넘었음에도 저녁 8시 15분에 사무실을 나오면 너무 일찍 퇴근하여 불안할 정도였으니····.      


9년 차, 과장에 진급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듯 나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사람은 자기 자신이 경험한 프레임 내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출발할 때 나의 생각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제조업 대기업 과장의 생각이었다.    

  

여행을 출발할 때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그동안 야근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야근이 적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그리고 내가 제조업 대기업 과장이었기 때문에 제조업으로 유명한 나라를 보고 싶었다. 아니, 그 나라들을 돌아본 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 나라로 취업/이민을 가고 싶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덕분에 북유럽에 6개월, 독일에 2.5개월을 머물렀지만 결국 총 여행기간 1년 8개월이나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모두 마친 후 

결국은 의료와 교육에 강점이 있는 한국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결론에 도달. 지금은 회사에서 주로 수행했던 경력을 살려서 중소기업/스타트업 대상 인사/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며, 취업준비생/대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하며 지내고 있다. 대기업에서 수행했던 시스템과 세분화된 업무에 비해 프리랜서로서 시간과 제공 컨텐츠를 비교적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나름 그 분야에서 고객사/거래선/학생/취업준비생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다.      


첫 3년은 좋았다. 내가 회사를 나올 때 꿈꾸었던 자기 주도적 방향 설정과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예전의 습성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적인 사고방식. 회사를 다닐 때와 동일하게 같은 파일을 네다섯 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토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업무 수행함을 넘어서서 생활 저변에 깔려 모든 방면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예전의 피곤했던 성격으로 돌아갔다.      


사람의 성격이란 외형적인 환경이 바뀌면 으레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나에게는 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것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주의적인 일처리 덕분에 실력으로 주변에서 인정받는 점은 있다. 잠재된 성격이 표출되면서 능력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숙련도와 성격이 나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 성격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여유와 내려놓음은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철저한 마음속에서 요즈음엔 모든 일을 2% 정도 부족한 상태로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한다.      


다음부터는 어떤 일이든 세 번 이상은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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