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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Nov 10. 2017

아버지의 향기를 느끼며 (2)

오랜만에 아버지의 회사 후배분을 찾았다. 아저씨 사무실에서 잠깐의이야기를 나눈 후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메이저 신문사의 사장이시지만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계단으로 내려가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4층이면 높으면 높고 낮으면 낮은 높이인데…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친근하신 분이셨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아무거나 좋다고 답해드렸고, 아저씨는 “니 아버지가 자주 가시던 설렁탕집이다.”라고 하시면서 골목 뒤쪽의 한 설렁탕 집으로 안내해 주셨다. 

“인기 할아버지 모습도 있고, 선한 눈매는 아버지를 닮았네!?, 쏘주 한잔 하자.”   


아저씨와 처음하는 술자리였다. 설렁탕과 함께하는 약간의 낮술이었지만 부담 없었다. 우리는 나의 어릴적 이야기, 아저씨의 아이들 이야기… 등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낭만이 있었던 8,90년대의 아버지 무용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무용담 중 하나는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검찰청 출입기자로서 활동하셨다. 신입 시절부터 검찰청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알게 된 판검사분들과 같이 성장하였다. 2005년, 친할머니께서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 영안실에서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영안실 한쪽에서는 지난 30여년간의 역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었고, 한쪽에서는 1900년대 반세기 동안 명동을 주름잡았었던 어깨 형님들이 큰어머니께 인사하라며 줄을 맞추어 차례로 할머니 영정에 절을 하고 있었고, 또다른 한쪽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오신 교회분들이 예배를 드리고 계셨다. 그 광경이 놀라워 옆에 다른 호실 사람들도 구경을 올 정도였었는데, 지금도 내 친구들은 가끔씩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소주를 마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면서 아저씨는 아버지를 추억하고 계셨다.   

“뭐~ 아주 이른 나이도 아니다. 아버지 성질에 그때 가신 것이 오히려 편하실 수 도 있으실 거다.”  


맞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버지 자존심에 그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었다. 아버지는 혈액투석을 하시면서 본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셨는지 외출도 잘 안하셨고 지인 몇몇 분들만 만나셨었다.     


아저씨와 나,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쏘주 한잔에 감정이 격해져서인지 아저씨의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술은 즐거운 감정도 증폭시키지만 슬픈 감정도 증폭시킨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새롭게 자라나고 철들은 내 모습에 대한 격려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교차하면서 생기는 감정이신 것 같다.   


잠깐의 커피와 식사를 한 후,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배웅해 주셨다. 나의 눈을 보면서 아버지를 느끼시고 어색해서 보내시는 그분에게서 연민이 느껴진다. 여러 복잡한 감정과 단어가 있겠지만 연민 말고는 글로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신 분 중 한 분이시고,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실 텐데, 지금 당장의 모습에선 내가 더 냉정해 보이고 아저씨가 더욱 여려 보였다.   


요즈음 들어 아버지 친구분들의 연락을 종종 받는다. 그분들이 모였을 때, 내 이야기를 하신다고…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아버지의 전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철이 없었던 2,30대를 모두 보내고 30대의 끝자락에서 아버지 친구분들을 찾아뵙고 있지만 그분들은 나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분들을 통해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 당분간은 이 모습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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