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기차 운전하세요?”
나는 화물열차부터 새마을호까지 맡아 운전한다. 가끔 뽐내려고 새마을호 운전을 드러내 보이지만 타는 열차가 꼭 정해져 있지는 않다. 맡은 바가 다를 뿐, 모든 기관사 일은 비슷하다. 소방관이 소방차 크기 따지지 않고 불을 끄고 우체부가 구석지고 후미진 산골 마을 가리지 않고 편지 한 통을 배달하듯이 기관사 운전의 무게도 같다고 생각한다. 마구 평하지 않는 기관사와는 다르게 기차는 속도와 품질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태우고 나르는 방법에 따라 종류도 다르다. KTX는 등급이 높고 화물열차는 등급이 낮다. 등급 낮은 기차는 등급 높은 기차가 다가오면 선로를 넘겨줘야 한다. 하나뿐인 선로를 같이 쓰기 위해 급 낮은 기차는 가까운 역에 걸핏하면 대피한다. 철도는 하나라서 조화를 이루어야 안전하다.
객차는 특실과 일반실로 또 나뉜다. 어디든 돈 들이면 조금 특별해진다. 지나치게 다를 필요는 없다. 쓴 돈 채우려면 다시 애써야 하니까. 특별히 좋은 자리 앉는다고 먼저 가는 건 아니다. 같은 기차에 올랐다면 함께 떠나고 도착해야 한다. 기차는 약속된 시간에 온 승객을 두고 떠나지 않는다. 등급은 달라도 기차는 똑같이 달린다.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다. 겨룬다는 생각은 성당에서 하는 새치기처럼 어리석다. 우리는 미사 시간에 서로 끼어들거나 가로채지 않는다. 기차도 성당처럼 가려는 곳 닿을 수 있게 도와준다. 바라건대 돈 없어서 못 가는 꼴은 좀 없었으면 한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철도는 선로와 기관차가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증기 기관차를 만든 철도의 아버지 조지 스티븐슨의 말이다. 사실, 증기 기관차는 스티븐슨이 개발하기 10년 전에 이미 있었다. 하지만 나아지는 기관차와는 다르게 선로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기관차 성능에 걸맞은 강한 선로까지 생각해낸 스티븐슨이 역사에 남았다.
"부부도 하나다."
주례 선생님께서는 예식장 들어오는 순서를 달리했던 우리를 하나로 뭉쳐 세상으로 내보내셨다. 결혼 생활과 함께 올바른 부모의 길도 찾아야 한다. 꼭 선로와 기차처럼. 결혼해서 별스러울 것 없이 아내와 가면 벗고 산다. 씀씀이 헤픈 나보다 꼼꼼한 아내가 경제권을 쥐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서로 누구 돈이니 따지는 것도 우습다. 어우러지려면 아낌없이 내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그러지 못했다. ‘내 돈’이라는 생각에 아까웠다. 이런 정신 나간 생각도 했다.
‘돈은 내가 다 버는데 왜 먹기만 하는 거지?’
그러다 아이를 낳고 달라졌다. 지금은 모든 계좌를 아내가 관리하고 있다. 아내는 바쁘고 정신없다. 월급은 항상 부족하고 아이들은 넘쳐난다. 부디 아내가 내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주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번 달 용돈이 아직이다.
어느 날 첫째가 학교에서 앞니가 부러져 집에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 치아는 계속 나고 자라는 줄 알았다. 별스럽지 않게 대했지만 영구치라는 소리에 가슴이 쓰렸다.
“친구들하고 놀다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아이를 달래고 화장실에서 멀쩡한 내 치아를 탓했다. 둘째가 식탁에 올라가 넘어져 눈두덩이를 다쳤을 때, 셋째가 놀이터에서 팔이 빠졌을 때도 그랬다. 아이들이 아프면 나도 아팠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기쁘면 나도 기쁘다. 나 잘되는 것보다 아이들 잘 크는 게 더 기분이 좋다. 아이들 하는 짓이 흐뭇해 웃음이 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부모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다들 그러고 사는지 이제 알 거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숙해졌다.
열차 운전하고 산다. 나는 나만의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다. 요금 받고 계산하는 아내는 열차 차장처럼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힘쓴다. 승객은 아이 셋. 화려하진 않은 풍경은 기차에 가득히 머문다. 운전은 무슨 차를 타느냐 보다 어떻게 운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더 놀고,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해야지.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