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어디로 데려다줄까

by 레이노

올해는 다를까. 쓰러질 듯한 나라가 일어났고, 억센 지도자는 꺾여 나갔다. 걱정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노동 문제에 힘쓰던 김영훈 기관사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자기도 장관을 알아?”

물어보는 아내에게 알고 지낸 사람처럼 우쭐댔지만 사실 잘 모른다. 그분은 기관사 하면서 평생 노동 활동을 해오신 분이고, 나는 허구한 날 동네에서 탁구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결이 다르다. 내가 해온 연구라고는 ‘어떻게 하면 탁구를 잘 칠 수 있을까’라는 이불속 유튜브 영상 분석뿐이다. 한때는 나도 탁구 선수처럼 되길 바랐다. 상대를 뛰어넘으려고 열심히 탁구 쳤다. 살면서 뜻대로 되는 일은 없다. 얼마 전 ‘퇴행성 무릎 반달연골 미세 파열’ 진단을 받고 지금은 쉬고 있다.


나는 사고가 없길 기도한다. 내가 운전하는 기차도 우리 가족도 무사하길 바란다. 이미 충분하니까, 특별한 일이 없는 여느 날처럼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안다. 세상일 기도한다고 막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 내 기도 대로라면 작년에 한화이글스가 가을야구에서 우승했어야 한다. 기도는 대화라서 상대방 잡기 전에 내 마음부터 다잡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흐뭇하다.

‘가을에도 야구 본 게 어디여. 꼴찌면 또 어떻고. 고향 대전에 야구팀이 있어서 다행인겨.’

내가 하루를 수긍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한다. 욕심이 생기면 불행해진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하지 않는다. 소시지 야채볶음에 소시지만 골라 먹고 실컷 자다가 일어나면 핸드폰 게임만 한다’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행복도 끝난 거다.

기차는 주말에도 달려서 나는 주일미사를 드릴 수 없다. 이럴 땐 안타까운 척해야 하는데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글에는 웃음 띤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쩌다 가는 성당에서 우리 가족은 바쁘다. 성당에 가면 아내는 간식 준비로 분주하다. 첫째 아들은 다른 사람 일 참견하느라 자기 거 못 챙기고 다니더니, 성당에서도 미사 때 신부님을 따라다니는 복사(미사 중 제단에서 사제를 보조) 역할을 맡고 있다. 덤벙거리고 흥이 많은 둘째 아들은 성가대에서 드럼과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또박또박 말대답으로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셋째 딸은 전례부에 들어가 주송과 독서를 한다. 지금 자랑하는 거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교 입학에 실패했다고 인생 무너진 사람처럼 엉엉 우는 게 아니었다.

얼마 전, 대전 판암동성당 신자들 기차여행에 기관사로 운전을 했다. 판암동 성당은 20년 전 20년 넘게 다닌 성당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결혼해서 첫째를 낳을 때까지 다녔다. 울고 웃고 했는데 돌고 돌아 이렇게 또 만났다. 현재 판암동 성당 주임신부님은 이상욱 요셉 신부님이시다. 그전까지 기관사 천주교 모임 담당 직장사목 신부님이셨다. 사람과 사람은 기찻길처럼 이어져 있는데 그게 참 신기하다. 신부님과 헤어진다고 아쉬웠는데 멀리 못 가셨다. 하긴 가신다고 해도 예수님 손바닥 안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처럼 뜻밖의 상황과 예상 못 한 어려움이 나를 이끌었다. 덥석 시작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다. 싫다고 주춤거렸던 일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의도하지 않은 일들은 시간이라는 파도를 타고 흘렀다. 어느 틈에 나를 기관사와 세 아이 아빠로 이끌었다. 2026년 기차는 어디로 데려다줄까. 아이들 셋이 깔깔거리며 뛰노는 풍경을 본다. 이만하면 값진 하루다. 기쁘고 감사한 기차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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