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다양하다. 생김새도, 운전법도 제각각이다. 같은 기종이라도 운전해보면 다르다. 날씨, 객·화차 무게, 그날 사정에 따라 차이 난다. 매번 다른 기차가 늘 같은 선로와 어우러진다. 화창한 가을, 철도 탐방을 떠났다. 같은 철도에서 일하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지만 우린 제법 잘 어울렸다. 쉬는 날, 이불 박차고 떠났다. 직원들과 함께 떠나는 ‘인기있는 철근(철도 근처) 탐방.’ 이번 편은 잃어버린 시간을 품은 곳, 군산이다.
5명이나 모였다. 5명이라 자동차 한 대로 딱 좋은 인원이다. 뭐, 6, 7명이든 차는 빌리기 나름이긴 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열려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다 달랐지만 막히면 그럴싸하게 넘어갔다.
“우리 군산 철길마을 가면 옛날 교복을 입고 돌아다닐까요?”
김혜림 오송역 역무원님은 계획이 있었다. 그러려니 듣고 흘렸다. 내 사전에 얼굴 팔리는 일은 없으니까. 나는 떠들썩한 세상 속 조용한 삶을 바란다. 고작 글 한 편 쓰고 사는 거다. 그때 약목역 시설팀 막내 조현수 군이 씩 웃으며 답했다.
“오호, 재미있겠는데요?”
일제강점기, 평온한 군산 바다가 내 마음처럼 술렁였다. 일본은 호남평야의 쌀과 곡식을 몽땅 군산항으로 모았다. 군산항까지는 기차가 날랐다. 1912년 익산(당시 이리역)에서 군산까지 군산선 철도가 놓였다. 일본은 기차를 통한 약탈에 진심이었다. 군산선은 1914년 개통된 호남선보다도 개통이 빠르다. 2008년 군산선 일부(대야~익산역)가 장항선에 편입되었고, 2022년 최종 폐지되었다. 버려진 군산선은 요즘 ‘철길 숲’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조만간 군산에서 유명한 빵집, 짬뽕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 배가 고팠다.
군산 ‘짬뽕 거리’를 찾았다. 널리 알려진 음식은 맛봐야 한다. 홍콩 누와르 영화에 나올 법한 짬뽕 맛집에서 수다를 떨며 우리도 짬뽕처럼 버무려 졌다. 내친김에 빵집도 들렀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군산에는 ‘이성당’이 있다. 같은 업종이지만 맛이 다르다. 서동우 오송역 지부장님도 같은 직원이지만 내게 없는 것들을 가졌다. 빵집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빵, 저 빵 맛을 물어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나는 커피와 빵을 들며 마음을 내려놨다.
‘오늘 왠지 교복을 입어야 할 거 같아.’
‘경암동 철길마을’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철길 따라 뽑기, 달고나, 콩알탄, 추억의 간식들이 죽 늘어섰다. 옛날 교복을 입은 우리는 사진 찍으며 철길을 거닐었다. 경암동 철길은 군산선 곁가지다. 1944년 일본이 신문용지 제조업체(현재는 페이퍼코리아)까지 종이원료를 실어 나르던 철길이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철길이 추억으로 덮였다. 학창시절 실제 교련복을 입고 다녔다는 동우 형님을 아까부터 못 말리겠다. 자꾸 빗자루를 들고 중얼거린다.
“이거 총을 들어야 딱인데.”
군산에서 익산으로 넘어가는 길, 기차가 서지 않는 임피역에 들렀다. 시골의 작은 역 광장에 ‘시실리(時失里)’라고 쓰인 시계탑이 보인다.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뜻이 적힌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임피역은 수탈의 현장이었다. 수확한 쌀을 빼앗겼고, 전쟁에 아들딸들이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해도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목 놓아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삶을 잃었다. 일본이 앗아간 아픈 흔적이 시계탑에 담겨있었다. 대지본 호근 국장이 시계를 본다. 저녁에 여자친구를 만난다고 했는데 괜히 시간을 뺏은 건 아닐까. 온종일 운전하느라 고생일 텐데. 미안했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줘서 고마웠다. 내가 형이라 다행이었다.
아이처럼 만나서 어른처럼 헤어졌다. 취향이 다르니까 맞추고 채울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함께 하기로 했다. 신청자가 없으면 다단계처럼 한 명씩 더 데려오기로 했다. 설레고 낯선 하루가 친숙해졌다. 만나면 기분 좋은 다정한 사람들이다. 다르지만 조화를 이뤄야 하는 기차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