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의 무게를 덜어주는 글쓰기

브런치를 만난 기관사

by 레이노

오늘도 출근이다. 아침에 눈이 떠지질 않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긴다. 쉬는 날에는 새벽같이 바지런 떨면서 출근하는 날이면 꼭 이런다. “나는 기관사가 적성에 맞아”라고 뱉은 말들이 부끄럽다. 허구한 날 하는 기차 운전이 꼭 하고 싶은 일은 아닌가 보다. “월급날을 위해 일하는 기관사”라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얼마 전 대전역에서 손 흔들던 아이가 내게 물었다.

“기관사가 되면 뭐가 좋아요? 기관사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어요?”

아이는 기관사가 꿈이라고 했다. “기관사가 되려면 먼저 ‘철도차량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통과해야 한다”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기차를 좋아하면 누구나 기관사가 될 수 있지, 아저씨는 이렇게 기차 여행을 하니까 좋아.”

눈을 맞추며 어른 흉내를 냈다. 사실 일이 여행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차 여행은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기차를 객차에 앉아서 가만히 가는 여행이다. 아이도 알게 되겠지. 바다가 좋다고 선장이 되고 별이 좋다고 우주선을 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굳이 나까지 나서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악역들이 방해해도 주인공의 꿈은 계속되길 바란다.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저 작가 아니에요. 기관사예요.”

나는 작가가 아니다. 기차 운전하는 기관사다. 내가 글을 못 써도 되는 이유다. 물론, 기차 운전하기 싫어서 연가 신청할 때는 잠시 작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은 나를 도왔다. 2019년 브런치 웹 사이트에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올렸다. 세 번째로 올린 ‘청탁받는 기관사’라는 제목의 글은 다음 메인에도 올라왔다. 시원찮은 글을 화끈한 제목 한 줄이 보란 듯이 끌어올리는 힘은 놀라웠다. 2020년에 쓴 ‘아빠의 꿈 전원생활’이라는 글은 현재 조회수 20만을 넘는다. 일주일 동안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고 주간, 월간 베스트에도 뽑혔다. 보는 내내 가슴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조회수를 분 단위로 확인하고 댓글들도 꼼꼼히 살폈다. 글에 등장하는 차분한 내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집착했다. 기관사 동료들에게 우쭐대고 싶었고, 기차 손님들에게는 뽐내고 싶었다. 세상은 잠잠한데 혼자서 들끓었다. 그 후로 몇 번씩 다시 오르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간 글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알았다. 그런 일은 잘 없다는 거.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면 내가 바라는 건 이룰 수 없다는 것도. 내 꿈은 나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까지.


나는 꿈꾼다. 내 꿈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생각은 아침 이불의 무게를 덜어준다. 기관사가 되고 싶은 저 아이처럼 내가 다른 사람의 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올바른 방향으로 일하고 싶다. 살다 보니 정작 힘쓰는 일에 힘주는 법은 없었다. 운동도 음악도 글도 그랬다. 바란다고 되는 일도 없었지만, 이루고 싶어서 이루면 그건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욕심은 나를 괴롭혔다. 책 한 권 내고 싶은 꿈이 있지만, 악을 쓰며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이룬 꿈들이 많다. 방송, 연재, 인터뷰, 기고까지 제안받았다. 감사해야 할 일들이다. 이만하면 괜찮다. 내 하루는 꿈보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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