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흔들린다. 땅은 지진으로 요동치고, 마음은 애정과 거부감 사이에서 진동한다. 일본은 좋다가도 싫다. 촘촘하고 다양한 철도와 맛있는 음식, 감미로운 음악과 상상력 가득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마음 떨리게 한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뉘우치지 않는 태도는 치를 떨게 한다. 나는 옳고 그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일본이라서 안된다”라는 태도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성당 신자이지만 절에도 간다. 그렇게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 철도 박물관을 가면서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을 들었고 바다와 철도 건널목이 있는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 장소를 가면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노래를 흥얼거렸다. 놓을 수는 없다. 기차와 음악은 죄가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졌다.” 도쿄 사이타마현에 있는 철도 박물관을 보는 내내 질투가 밀려왔다. 입구부터 달랐다. 바닥에는 열차 시간표가 깔려 있고, 머리 위 조명은 폐색 신호기, 천장은 열차 주행상황을 도표로 그린 열차 다이어그램(Diagram)으로 꾸며져 있었다. 감동은 디테일(Detail)에서 시작되었다. 4층 높이의 건물 안에는 철도 차량 35대가 멋들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에 맞지 않아 녹슬지 않고,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철도 차량에 폭 빠져들었다. 마침 공연이 시작되었다. 몰려온 아이들은 기관사, 관제사, 역장이 함께한 건널목 사고 대응 공연에 스며들었다. 기차와 풍경을 작게 만들어 꾸민 디오라마(Diorama) 세트장에서는 열차들이 실제처럼 운행되는 모습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시장부터 아이들이 뛰노는 키즈 카페까지 철도로 가득했다. 내가 기관사라서 좋았다. 남의 나라 박물관이지만, 어깨가 으쓱해졌다.
여운을 안고 다음 날, 만화 ‘슬램덩크’의 성지 가마쿠라로 향했다. 철도 건널목이 바다와 어울리는 곳이다. 가마쿠라에 있는 관광지 에노시마를 지나는 ‘에노덴’ 전철이 바다 옆으로 흐른다. 철도 건널목은 전철이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가마쿠라에 화려함은 없었다. 오래된 역과 시설에 마음이 끌렸다. 있는 그대로를 남기고 지나간 기억을 간직하려는 걸까. 일본 철도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반듯하고 정돈된 느낌이랄까. 하나 본 것뿐인데, 바라는 것도 생겼다. 우리 철도가 사치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려함이 따스함을 지워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품고 사는 철도 이야기, 그 이야기를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란 인간도 흔들린다. 집을 나오면 들어가고 싶고,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다.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다. 3박 4일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놔두고 혼자 놀았다. 이쯤 되니 미안해진다. 벌이라도 받으라는 듯, 여행하는 내내 빗방울이 따라붙었다. 신이 있는 게 분명하다.
임무를 완수해야 할 시간이다. 떠나기 전 막내딸이 정성껏 써준 쇼핑 목록을 펼쳤다.
“귀여운 아이템, 푸딩, 녹차 초콜릿, 곤약젤리, 탄산캔디”
기가 막혔다. 나와 이빨은 처지가 같다. 자기 이빨도 아빠 대하듯 마음에 두지 않는다.
‘곪아서 빠져봐야 귀한 줄 알려나.’
어설픈 일본어로 종업원에게 묻고 또 물었다. 탄산캔디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사탕에서 탄산이 터진다는 건 뭔 말인지. 무슨 맛을 좋아할지 몰라 한가득 담았다. 녹차 초콜릿은 깜빡했다가 공항 면세점에서 간신히 구했다. 큰일 날 뻔했다. 가방을 풀면 웃을 걸 생각하니, 다시 설렌다. 역시 한국이 좋고 집이 편하다. 고마운 일이다. 흔들리는 아빠 하면서 사는 것도 좋다.
https://youtu.be/x0XXKAuw6dU?si=Aks_2JhHq5Wot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