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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Jan 10. 2020

책 <코스모스>를 읽으면 일어나는 일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티끌이면서

“아빠! 또 예선 탈락이야?”


어쩌면 딸은 여섯 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통 여섯 살 아이들은 풀이 죽은 아빠를 보면 "아빠 힘내세요"라고 하지 않나?
“아빠는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아.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딸은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고는 사라졌다.
딸은 여섯 살이 아닌 게 분명하다.


기관사인 나는 주말에 쉬는 날이 많지 않다. 주말에 같이 놀자는 딸을 뒤로하고 나간 탁구 대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예선 탈락이다.
시합에서 지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탁구 이게 뭐라고...
책상 한가운데 그물을 쳐서 나무 주걱으로 공을 주고받는 놀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건강하게 지내려고 시작한 운동이다.
굳이 스트레스받을 일 아니라서 딸에게 괜찮다고 했는데 정작 마음은 그렇지 않다.

이럴 때 나는 세상을 넓게 보면서 마음을 달랜다.
깊은 생각에 잠겨 우리가 사는 지구를 떠올리면 '인생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지구로 안 되면 별과 달, 그리고 태양도 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코스모스는 끝이 없을 만큼 드넓고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니까.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 아닌가?’ 


코스모스가 우주에 있는 별과 은하와 행성을 말하는지 몰랐다.

코스모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게 과학책 『코스모스』는 여느 인문학 책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코스모스』는 무려 719쪽의 ‘벽돌 책’이다.

평소에 ‘벽돌 책’은 관상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렵지 않게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코스모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유시민 작가의 한결같은 추천 덕분이다.

유시민 작가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 출연해 ‘무인도에 갇히게 되면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   


“코스모스는 최초로 우주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말이 되게 얘기해 준 책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복해서 읽으면 좋은 책으로 『코스모스』를 추천하기도 했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 박사는 우주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존재하는지 빼어나게 설명한다.  


“우리가 먹는 피자는 모조리 설탕이니, 물이니 하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다시 원자들로 구성된다. ‘원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맞다. 내 몸도 밤하늘 별도 분자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별도 달도 탁구대도 따지고 보면 같은 물질이다.

탁구는 인류가 생기고 우연히 만든 게임 중 하나일 뿐이다.
특별하지 않은 놀이에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영웅까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우주에 떠다니는 티끌만 한 지구에 살면서 기쁘고 즐겁게 노는 일에 지금까지 마음을 쓰다니. 어리석었다. 아등바등 살아 뭐하겠나.
내일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딸과 함께 놀아야겠다.
푸른빛 지구 잔디밭에서 발로 공을 차서 그물에 넣는 축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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