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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Jan 04. 2020

'타는 곳'은 마음만으로 알려줄 수 없다

찜질방에 있는 사람들이 마시던 식혜 잔과 머리에 쓰던 수건을 그대로 두고 나간다. 

찜질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식혜 잔과 수건. 


'사람들 정말 너무 하네' 


찜질방에 있는 동안 식혜 잔과 수건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나가는 길에 넣지 뭐' 

찜질을 마치고 나가면서 버려진 식혜 잔과 수건을 들어 쓰레기통과 수거함에 넣었다.  

마음 한구석 밀려오는 뿌듯한 만족감. 

착한 일을 하면 늘 기분이 좋다.  

어쩌면 나의 이타적인 행위는 이기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얼음까지 버리면 어떻게 해요!" 

청소하시는 분이 짜증을 냈다. 

내가 버린 식혜 잔에 얼음이 들어 있었는데 쓰레기통에 함께 넣은 게 화근이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고 쓰레기통에 넣었던 잔을 다시 꺼내 얼음을 분리하고 다시 넣었다. 

'괜히 했네'

순간 괜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인 행위로 인한 만족감을 얻으려다 불만이 생겼다. 

어이가 없다. 

  

'선의를 베푸는 일에도 책임이 따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함부로 도와주면 안 되지만 도와주려면 확실해야 하지 않을까.  


기관사 제복을 입고 역에 다니다 보면 고객들이 '타는 곳'을 묻는다.   

잘 모르는 일에 섣불리 고객을 안내해서는 안 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직원을 소개해야 한다. 

정확하게 '타는 곳'을 알고 있어야 알려 줄 수 있다. 

혹시 잘 못 타면 어쩔 건가. 

선한 행위라고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 없이 짐승으로 사는 것도 문제이지만 

도와주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식혜 잔을 치우기로 마음먹었으면 

잔 속에 있는 얼음으로 발생되는 책임 또한 져야 하지 않을까. 


돕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기쁨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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