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노 Aug 27. 2020

아버지의 꿈 전원생활

꿈을 이룬 아버지와 나, 두 손든 어머니와 아내

아버지의 꿈은 전원생활이다.

"시골에 농가주택을 한 채 사고 싶다"라는 아버지 말씀은

지난 30년 동안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나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한가로이 생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 돈이 없는 걸 어떡해요"


나의 노후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미래를 보는 거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기를 쓰고 반대하시는 어머니에게 매번 혼나면서도 잊을 만하면 농가주택 얘기를 또 꺼내신다.

아버지의 끈기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에 그저 놀라울 뿐.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듣고는 애먼 나를 붙잡아 "네가 어떻게든 해봐"라고 하실 때면 가슴이 먹하다.

내가 은퇴할 때쯤 돼도 그 만한 돈이 있을까 말까 할 텐데 뭘 어쩌라는 건지.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도 그렇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는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 이시다.

자본주의 경제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인간의 꿈 얘기 따위는 강아지가 풀을 뜯어먹는 한심한 소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실게 분명하다.


"혹여나 아버지 돌아가시면 나는 평생 죄인 되는 거 아냐?"

중국에 사는 여동생을 붙잡고 하소연했지만 동생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밭을 사서 태양광 투자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을 가진 동생에게 꽃과 나무 이야기는 남자의 원시 본능에 따른 한심한 짓거리에 불과했다.

하다못해 밭을 사도 상추와 깻잎을 심어야지 꽃을 왜 심냐는 말이 돌아왔다.

"먹지도 못할 단풍나무는 왜 심냐?"

늘 이런 식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버지 꿈을 이루어 드릴까?"

아내 눈치를 보다 슬쩍 말을 건넸다.

아내는 시아버지를 인질로 아 자기 꿈이나 이루려는 얄팍한 수작으로 받아들여 바로 묵살했다.

친구와 동료들은 "매일 잡초 뽑아야 하고 벌레 나오고 춥고 더워서 해보나 마나 고생"이라며 후회할 거라고 했다.

'왜 내 행복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걸까?'


지난 5년 동안 땅을 보러 다녔다.

돈도 없으면서 부모님과 함께 취미 생활하듯 돌아다녔다.

아까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나고?

어머니는 인간의 낭만에 반대하셨지 욕망에 반대하신 게 아니다.

투자로서 가치 있는 땅이라면 찬성하셨다.

그만큼 땅은 가격이 중요했다.

텃밭에 수도, 전기 시설을 갖춘 6평짜리 농막(컨테이너 집)을 생각했다.

사는 곳에서 30분 이내에 위치한 진입로가 분명한 곳.

투자가치가 있고 송전탑과 축사가 없으면서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작은 텃밭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런 땅 없다.

정해진 가격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는 법.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싸면 안 좋고 비싸면 좋은 거다.


코로나19가 내 얘기일 거라 생각도 못했던 올해 초.

공주시에 40년 넘은 농가주택이 매물로 나왔다.

마침 중국에 사는 동생이 귀국해 부모님 댁과 우리 집을 오가고 있었다.  

"우리 농가주택 보러 갈까?"

심심해하던 부모님과 동생에게 넌지시 얘기를 건넸다.

매물로 나온 농가주택은 공주 중심지이고 앞으로 신라의 경주처럼 백제의 공주도 발전할 거라는 뱃심 좋은 장담에 어머니도 솔깃해하셨다.

농가주택은 40년이 넘었지만 꽤 쓸만했다.

넓은 마당, 산이 보이는 위치, 텃밭 조금...

알아보고 다녔던 텃밭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제외하면 흠잡을 게 없었다.

순간 아버지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앞으로 두 배가 오를 땅이라며 투자를 강조하셨다.  

나는 행복 전도사가 되어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노래했다.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두 손을 드셨다.

순식간이었고 뭔가에 홀린 듯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실 산책하는 마음으로 나섰다가 매물을 보고 바로 계약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별안간 밭이 아닌 집이 있는 대지를 사버렸다.

내 말 한마디로 돈 1억이 순식간에 지출되었다.

강력하게 가족의 행복을 외쳤지만 나라고 무슨 확신이 있는 건 아니잖는가.

아버지는 구름 위를 걷는 듯 신이 나셨고 그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생은 어리둥절했고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기는 마음껏 뛰어도 되고 소리 질러도 돼"

첫날 방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뛰어도 돼?"

"와 신난다"

막내딸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마당에는 대형 수영장을 설치했고 수영장 위로는 그늘막을 묶어 달았다.

어머니는 뒤뜰에 체리, 키위, 복분자, 아로니아, 대추나무를 심으셨고 앞뜰에는 상추, 깻잎, 고추를 심고 작은 화단을 만드셨다.

아버지는 요즘 깨진 담벼락을 메꾸는 시멘트 보수 작업에 빠져 계신다.


농가주택을 구입하고 두 분의 사이가 무척 좋아지셨다.

전쟁통에 전우애를 발휘하는 군인처럼 단결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전과 다른 점은 아버지께서 무조건 양보하신다는 것이다.  

대화중에 작은 다툼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를 치켜세워 돈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시려는 거 같다. 속셈이 뻔한데 어머니는 그걸 또 넘어가신다.

여하튼 농가주택 이야기로 두 분이 하나가 되신 건 분명하다.

늦은 오후 마당에서 삼겹살에 막걸리를 한잔하던 날 여간해서는 겉으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못해 보고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중국에 사는 동생은 코로나가 심각해져 올 수 없는 상황이다.

가끔 카톡에 사진을 찍어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면 동생은 우는 표정으로 답을 전해온다.

아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만 농가주택에 페인트칠하는 일을 함께 했다.


주변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했다.   

어머니는 돈 1억을 놓고 괜찮은 상가나 오피스텔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셨지만 결국 가족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셨다.

어머니는 만족해하시고 아버지는 행복해하신다. 

사람들 말처럼 밭일은 힘들고 시골집은 춥고 덥고 벌레는 많았다.

나는 노랭이라는 벌레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자고 일어나면 담벼락을 기어 다니는데 징그러워 꼴도 보기 싫을 정도다.

해 질 무렵 모기는 어찌나 많은지 바르고 뿌리는 모기약은 필수다

다른 사람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도 옳다.

아버지와 나는 더 이상 '삼시세끼'와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지 않는다.

아파트에 새워져 있는 캠핑카나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봐도 부럽지 않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가장 재미있는 하루.

매일 기록 경신하며 살고 싶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이전 03화 오락실 게임처럼 기차와 내 필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