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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Sep 04. 2020

멈춘 하루

평범한 일상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깨 농사는 끝까지 몰라"

농사짓는 선배가 들려준 깨 농사 이야기.

"장마 때 폭우가 쏟아지잖아? 그러면 웃자란 놈부터 쓰러지는 거야"

"많이 자란 놈 쓰러지눈에 띄지도 않던 작은 깍지들이 쑥 뻗어 올라와. 그래서 결국 추수하게 되더라고"

코로나19로 멈춘 오늘.

쓸데없이 많이 자라면 연약해진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괜히 뭔가를 많이 해서 이 지경이 된 건 아닐까?

웃자란 우리는 이제 쓰러져야 하는 걸까?


미세먼지를 조심하던 마음은 애교에 불과했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리도 무서운 이야기를 저토록 차분한 목소리로 전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만약 브리핑 도중 울먹이거나 상황을 다급하게 전했다면 나도 따라 엉엉 울었을 거다.

친구들 만나고 가족들과 여행 가던 평범한 일상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힘들고 지루한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7살 막내딸은 어린이집 등원을 멈췄고 5학년, 2학년 두 아들은 격주로 등교를 한다.

홀수 학년인 첫째가 등교하면 짝수 학년인 둘째는 집에서 온라인 교육을 받는다.

"아싸 나는 학교 안 간다"

"형은 가는 날이네"

둘이 같이 가면 좋으련만 학교 가는 쪽이 늘 울상이다.

두 살 터울이 가장 좋다는 어른들 말씀.

코로나 시대를 예견해 홀짝을 맞추라는 조언이었나 싶다.


마스크는 신체 일부가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걷다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얼굴 반을 가렸는데도 알아보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로 외모를 판단할지도 모른다. 


"기관사는 멈추는 게 실력이다"

 운전은 움직이는 것보다 제때 정확한 위치에 정차하는 것이 더 힘들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하는데 자꾸 착각을 하고 산다.

로또는 당첨될 거 같고 코로나는 왠지 안 걸릴 거 같은 착각.

하나뿐인 지구에 웃자란 깍지처럼 쓰러지지 않으려면 일상을 멈춰야 한다.

멈춰야 탈선하지 않는다.

도 코로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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