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고백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밤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 밤.
불을 끄고 누워 있지만
머릿속은 전쟁터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걱정이 밀려오는 밤이면
나는 믿지 않는 신에게 말을 건다.
나는 무신론자일까.
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살아왔다.
그 질문은 늘 잠 못 드는 밤에만 떠오른다.
잘 모르겠다.
나의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 문을 드나들며 시작됐다.
따분했던 목사님의 설교에 언제나 졸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도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던 날은
세뱃돈을 받는 설날과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던 성탄절이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서
나는 신보다 분위기를 더 좋아하던 아이였다.
주말이면 학교 친구들과는 결이 다른
교회 친구들을 만났고,
설교보다 예배가 끝난 뒤의 수다가 더 즐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매년 '문학의 밤' 무대 위에서 찬양을 부르고
친구들과 성극을 했다.
그때의 나는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그 안에 속해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과학과 역사를 배우면서
신이라는 존재에 질문이 생겼다.
그즈음부터
그들이 말하던 신앙과 삶 사이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울며 기도하며 회개하던 사람이
예배당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를 험담하는 모습을 보았고,
사랑을 말하던 입술이
돌아서서는 독한 말을 내뱉는 것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을 의심하면서도 사람을 더 의심했다.
질문이 많던 나를 못마땅해하던
한 전도사의 눈빛은 내 안에서 무언가를 닫게 했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신앙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나는 신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밤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오래전 잊어두었던
그 이름을 떠올린다.
어느 밤은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답을 찾으려 애쓸수록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밤은 깊어지지만
내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 옆에
숫자 1만 남아 있었다.
내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방 안에는 내 한숨 소리만 맴돌았다.
그저 숨이 가빠지지 않도록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렸을 적 그토록 싫어했던 그 말이.
헛웃음이 나왔다.
이대로 있으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도라기보다는,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은 말이었다.
“어떻게든… 이 밤이 지나가기를.”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손을 모으지도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었다.
참호 속에서는
신을 부정하던 사람도
결국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밤의 나도 그랬다.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였고,
신을 증명하려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을 내뱉고 나니
조금은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었다.
읽히지 않은 메시지는 그대로였고,
밤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혼자 감당하던 무게가
조금은 나뉜 느낌이었다.
나는 무신론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낮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다가도
밤이 되면 또 다른 내가 고개를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는
또다시 그런 밤이 오면
나는 아마도
조용히 그 이름을 부를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조금 덜 무너질 것이다.
“제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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