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걱정 사이에서
바쁜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면
나는 어느새 미래로 간다.
실직의 두려움과 남아있는 대출금,
막막한 노후가 차례로 떠오른다.
잠들려 눈을 감으면 과거가 고개를 든다.
누군가의 차가운 한마디가 마음을 파고들던 날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삼켜야 했던 감정들,
그때의 상처가 다시 살아난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만 또렷해지고,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잠은 멀어진다.
과거든 미래든,
내 마음은 늘 ‘지금’이 아닌 곳을 먼저 찾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머문다.
과연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을까?
돌아보면 후회와 불안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때는 참 좋았는데.'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각기 다른 기억들이지만
모두 마음의 상처를 건드린다.
놓아주지 못한 과거가
지금의 나를 흔드는 것이다.
실수는 후회로, 사건은 원망으로,
상처는 분노로 되살아나
지금의 기쁨을 빼앗아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기억들은 늘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제발, 이제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처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늘 비슷한 아픔이 나를 흔들어 왔다.
이미 끝난 일들이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반복된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무런 예고 없이 다시 나를 덮쳐온다.
햇살 좋은 오후였다.
점심 식사 후 직원들과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던 중
한마디 말이 우리 대화를 멈춰 세웠다.
"넌 몇 번을 알려줬는데 이런 것도 똑바로 못 하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후배 직원이 선배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야단을 맞고 있는 건 후배였지만
내 가슴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유독 엄했던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기피하던 그는
작은 실수에도 큰소리로 야단치기 일쑤였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인격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 상사의 야단치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려오고,
화가 난 얼굴이 눈앞에서 또렷해졌다.
그리고 내 가슴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마음 깊이 있던 기억 하나가
나를 과거로 끌고 갔다.
그 기억은, 평온했던 오후를 망쳐버렸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다.
그 기억을 놓지 못한, 지금의 나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불행해진다.
죽음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라는 말처럼.
이렇듯 우리는 필요 이상의 후회와 쓸데없는 걱정으로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마치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습관처럼 다시 만지는 것처럼,
스스로를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잠시 내려놓은 채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려 한다.
현재가 곧 우리의 삶이며,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작가 고명환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에서 말한다.
"한 시간의 독서로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은 없다."
이 문장을 마음에 두고,
나는 책을 읽고 걷고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정은 가라앉고 마음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 방법 덕분에
나는 불필요한 잡념의 감옥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힘은 생겼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지금을 지나고 있다.
오늘도 마음은 자꾸 다른 시간으로 달아나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본다.
도망치지 않고 머무는 연습을 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INKiTH #잉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