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눈이 소복이 쌓이고 까치가 울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손수 끓여주시던 떡국이다.
뽀얀 국물에 파란 대파와 노란 계란, 검은 김의 색 조화가 참 고왔다.
추울수록 더 진해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눈사람처럼 얼었던 몸이 떡국의 온기로
다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맞벌이하시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 강아지 왔네." 하시며
늘 할머니가 날 반기셨고,
어쩌다 맛있는 것이 생길 때면 가장 먼저 맛보는 건
내가 우선이었다.
그 시절, 할머니는 늘 주방에 계셨고
음식 준비하는 소리와 괜히 배가 고파지는 향기가
매일 집안에 작은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중학교 겨울방학이던 그날도, 할머니는 떡국을 만들어 주셨다.
먹음직스러운 떡국은 그날따라 맛이 이상했다.
세수할 때 어쩌다 비누가 입에 들어가면 났던 맛, 그 맛이 났다.
"할머니, 떡국 맛이 이상해."
내 말에 할머니는 떡국을 연거푸 떠먹으시며 당황해하셨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아니야, 맛이 이상해. 할머니 떡국에 뭐 넣었어?
비누 맛이 나는 것 같아. 배고팠는데 이게 뭐야."
이상한 맛이 나는 떡국에 속상한 나머지
할머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투정만 잔뜩 부렸다.
나는 그저 빨리 배고픔을 달래고 싶었다.
"내가 눈이 침침해서 비누 조각을 떡인 줄 알고
같이 넣었나 보다…"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시며 미안해하셨고,
같이 드시던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 침묵의 의미를 그땐 몰랐다.
할머니는 급히 라면을 끓여 주셨고,
비누가 들어간 떡국은 말없이 치우셨다.
할머니의 뒷모습은 작아 보였다.
그날 주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할머니보다 더 어른인 척 굴었던 내가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
가족들 먹일 한 끼를 챙기느라 늘 바쁘시던 할머니.
내 강아지, 내 강아지 하시며 나를 끔찍이 이뻐하셨던 할머니.
어린 시절 항상 내 편이 되어주셨고,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울고 싶을 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할머니 품으로 도망쳐 숨었다.
"난 할머니 품이 너무 좋아."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나중에 할머니 늙어도, 냄새난다고 싫어하면 안 된다."
"아니야. 냄새 나도 할머니 품이 제일 좋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그 품과 같은 곳을 더 이상 찾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눈이 내렸다.
거리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다가
할머니가 끓여주신 비누로 만든 떡국이 떠오른다.
이상한 맛이 나도 좋다.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떡국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맛볼 수 있다면.
이제는 할머니의 음식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창밖에 쌓인 눈보다 내 가슴을 더 시리게 했다.
나는 그 당시 하지 못했던 말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뇌었다.
"할머니, 투정 부려서 미안해요.
그리고 많이 보고 싶어요."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보고 싶은데
다른 사람 꿈에는 놀러 가시면서
내 꿈에는 왜 안 오시는지.
오늘 밤은 다른 곳으로 마실 가지 말고
할머니 강아지 꿈으로 놀러 와줘.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여전히 떡국을 떠올린다.
#INKiTH #잉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