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질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음악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by INKiTH

짧고 메마른 문자가 왔다.


'짐 다 옮겼어'


서로에게 힘들었던 날들이

마침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건 오래 머물지 않았다.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빈자리를 찾아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창문 밖 크리스마스트리는

깊은 밤을 홀로 밝히느라

애쓰는 모습처럼 보였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었다.


따뜻하지 않은 고요함과

내 몫으로 남은 절반의 가구와 가전만이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구가 빠져나간 바닥에는

그 자리에만 먼지가 남아 있었다.


이제는 들리지 않는

잔소리에도 멈추지 않던 뛰는 소리와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재잘거림.


아들이 없어진 집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비어 있는 공간보다,

사라진 소리만큼은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마음고생한 나를 위해

한 달 월급보다 비싼 스피커를 거실에 놓았다.


텅 빈 공간을 좋은 소리로 채워두면,

이 집도, 나도

조금은 괜찮아 보일 것 같았다.

이 정도의 스피커라면

사람이 사라진 자리까지

모두 채워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스피커를 켜자,

소리가 넓어진 거실을 가득 메웠다.

잠시,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전문가들이 말하던 ‘좋은 소리’가

어떤 것인지 귀로 먼저 와닿았다.


그 소리는,


거기까지였다.


집 안의 공간은 음악으로 가득 찼지만

내 안에는 아직 소리가 닿지 않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선곡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듣는 사람이 문제인 걸까.


답을 알 수 없어,

내 마음까지 채워줄 좋은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조용해진 거실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어렸을 적,

나는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전래 동화 테이프를 틀어두곤 했다.


조금 더 자라

대중가요를 들을 나이가 되자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샀던

신해철의 앨범.


전래 동화를 듣던 그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앨범을 들었다.


음질은 투박했지만,

노래가 끝나고 버튼이 튀어나올 때까지

나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시절,

지금은 사라진 동네 레코드 가게 진열대에서

신해철 테이프를 꺼내 들고,

쉽게 내려놓지 못하던 순간.


케이스 비닐을 조심히 벗기고

플레이어에 넣어

재생 버튼을 누르던 그때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 번도 넘기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어린 시절,

의미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노래 속 가사와 선율이

옛 추억과 함께 되살아나

내 마음에 조용히 번져 갔다.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와

더 작은 스피커로 듣던 그때의 음악이

잊고 있던 표정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좋은 음악이란 뭘까.

음질일까, 가사일까.


아니면

그 음악을 듣고 있던

그때의 마음일까.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의 노래를 꺼내어 듣는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남긴다.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나를 붙잡지 못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INKiTH #잉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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