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래도 잘 버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계절이 바뀌며
무더웠던 바람이 어느새 기분 좋게 시원해질 무렵이었다.
단독 주택에 살던 나는 집 근처 복도식 아파트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복도 난간 너머에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으로 가면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아파트 높은 층의 바람은 아래층의 기분 좋은 바람과는 다르게
매섭게 불고 있었다.
난 학창 시절 학교 공부를 등한시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내 머릿속은 공부 외에
온통 잡다한 것들에만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모습과
저조한 학교 성적에 만족하실 리 없었다.
내 초라하고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정도로 창피한
성적표가 나오는 날 하굣길은 죽임을 당할 걸 알면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계속 뒷걸음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보려 나름의 노력도 해봤다.
의지가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내 학습 능력에 한계가 있었던 건지,
책상에 앉아 있어도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내 생활기록부에는 늘 "주의가 산만하다."라는
선생님들의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혼날 때마다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이 말처럼 나는 떡잎부터 될성싶지 않은 나무였다.
훌륭한 부모님 사이에서 나 같은 게 태어났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부모님은 내가 아닌 공부 잘하는 자식을 얻고,
나는 교육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부모님을 만났더라면
부모님과 나는 각자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부모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을 잘 둔 부모로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공부를 못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집 안에서는 공부를 잘했던 동생과 차별당하고,
집 밖에서는 부모님 주위에 공부 잘하는 자식들과 비교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왜 맞지 않은 사람들이 혈연으로 맺어져 서로에게 아픔이 되고
상처를 주며 살아야 할까.
부모님이 바랐던 기대라는 벽은,
그 당시 올라갔던 아파트의 높은 층처럼 내겐 너무 높았었다.
그 기대에 미칠 자신이 없었다.
가장 인정받고 싶던 사람에게 매번 실망만 안겨주는
못난 나의 자신감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진 캔처럼 밟혀 찌그러지고, 내팽개쳐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인정받지 못한 나는 어느새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죽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죽음으로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부모님은 더 이상 나로 인해 실망하지 않아도 되니
내가 죽는 게 서로를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한편으론 못난 놈이 못난 생각만 한다고
부모님이 미워서 나의 죽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한심한 복수였다.
그날 아파트 높은 층에서 하염없이 떨어졌던 내 눈물처럼
나도 같이 떨어지는 상상을 수십 번 했다.
그때 불었던 매섭고 차갑던 바람만큼이나 내 삶도 차갑고 공허했다.
원망스럽고 억울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는 이해받기를 바랐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몹시 그리웠다.
어쩌면 나는 정말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다정한 관심과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두워질 무렵
마음속 울분이 서서히 가라앉자
문득 나를 사랑해 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받았던 따스한 미소와 다정했던 말들이
집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날 이후, 내가 처했던 상황이 바뀐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더 이상 피하지 않았고,
그렇게 덤덤히 받아들이려 애썼다.
쉽지 않았다. 때로는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약했던 내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죽을 용기도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살면서,
나처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로
죽음을 떠올리거나,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더 큰 상처와 또 다른 고통의 씨앗이 되어 세상에 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죽음은 운이 좋아야 한 줄 기삿거리로 읽히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에게 잊힐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내 눈에는,
세상은 개인의 죽음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내 어린 시절 일이었지만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이런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고,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잘 견뎌냈으니,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그때의 나에게 잘했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했다.
돌아보면 나의 삶에도 시기와 때,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통은 늘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짙은 바다의 파도처럼,
하나의 고통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계절이 수십 번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리석은 생각까지 하게 했던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견뎌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에게 찾아왔던 소소한 행복들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고,
인생의 작은 깨달음들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아픔과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던 부모님의 사랑조차
끝내 몰랐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한 대사가 떠오른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이 말의 의미가 이제는 마음 깊이 와닿는다.
그날 아파트 위층에서 불던 매서운 바람은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제 그 바람은 다르게 느껴진다.
여전히 차갑지만, 그 속에는 삶의 의미와 따스함이 섞여 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지금의 아픔에 가려져
아직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가 나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덤덤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당신도 언젠가는
이 시간을 돌아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래도 잘 버텼다.'라고.
#INKiTH #잉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