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라떼는 대신, 요즘을 먼저 묻는다는 것

by INKiTH

"회사란 원래 그런 거야."


"우리 때는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도 못 했어."


"솔직히 ㅇㅇ씨만 힘들어?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딨어?"


퇴사한 직원의 업무까지 떠안게 된 내가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고 직장 상사에게 고충을 털어놨더니

돌아온 뻔한 답변이었다.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고,

그 소리만 유난히 또렷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했다는 사람처럼.

목이 말랐지만 물은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이마엔

‘요즘 것들은 참을성이 없어.’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꽉 막힌 얼굴 뒤로 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무실 벽이

그 상사보다 더 현명해 보였다.


최소한 벽은,

내가 틀렸다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으니까.


그날의 답답함은

승부조작으로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경기처럼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결론이 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공손했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새로운 메일이 몇 통 더 와 있었다.


‘나도 나이 먹으면 저런 모습이 되는 걸까.’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어른들 모두가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어릴 적 아침,

나의 알람 소리는 헤어드라이어 소리였다.


아침 일찍 단정하게 차려입고

출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나에게는 몇 안 되는 자랑거리였다.


무서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말도 잘 못 거는 아들 사이에서

어머니는 늘 조용히 감정의 다리가 되어주셨다.


그런 어머니는 배움을 멈춘 적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디지털대학교에 들어가

학사학위를 받으셨다.


몇 해 전, 생일을 앞두고

필요하신 게 있으신지 여쭸더니

프로그램 코딩을 배우는 데 필요하다며

태블릿 PC를 말씀하셨다.


"갑자기 코딩은 왜 배우시려고요?"


취준생도 아닌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공짜로 알려준다기에 한번 배워보려고."


그 후 가끔 부모님 댁에 가면

어머니는 책상 위에 태블릿 PC를 올려두고

안경을 쓰신 채 강의를 보고 계셨다.


화면 속 작은 글씨를 보려

고개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가셨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영상을 멈추고 다시 되돌리셨다.


그 순간만큼은

일흔이라는 나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배울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나이 들면 멈춘다고 말하지만

그날 나는 멈추지 않는 어른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의 대화는 중간에 끊겨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잘 경청하시고,

현명한 질문으로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신다.


하지만 어떤 대화들은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다.


어머니는 요즘 수영을 배우신다.

평생 두려워하던 물 공포증을

이제야 조금 이겨냈다며 좋아하신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알고 있던 ‘어른’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멈추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라떼는”으로 대화를 닫는 대신,

“요즘은 어때?”라고 다시 여는 사람.


나는 아직

그 질문을 배우는 중이다.

#INKiTH #잉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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