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이 한 사람이 이긴다.
예전에 (실명은 굳이 적지 않겠습니다만) 한국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로는 제일 성공하신 분을 만났었습니다. A 대표라 합시다. 기자 시절이었습니다. 그에게 뉴스를 활용한 뉴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면전에 앉아있는 게 기자인데도, 그는 단호했습니다. "만화와 웹소설 외에 뉴스 같은 hard contents는 전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제가 뉴스를 활용한 뉴미디어를 하고 있습니다만) 현상만 놓고 보면 그의 말은 맞습니다. 웹툰과 웹소설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그 외의 콘텐츠 쪽에서는 거의 성공사례가 없습니다. 콘텐츠에 가장 과감한 투자를 했던 사례는 피키캐스트였던 것 같아요. 200여명의 직원으로 마케팅비만 400억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투자를 했죠. 그런데도 지금은 많이 쪼그라든 상태입니다. 그 뒤에 한국 콘텐트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우린 안돼"라는 자괴감이 생겼을지도요.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를 안봐", "네이버가 다 먹어서 콘텐츠는 안돼", "페이스북이 정책을 바꿨어", "한국은 시장이 작아", "모바일 광고 단가가 계속 떨어져" 등 이유는 많습니다. 저도 일정 부분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나온 이 책은 콘텐츠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화제가 됐었습니다. 뭔가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해법을 알려줄 것 같았거든요. 원제가 'the contents trap'인지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뭔가 사람들이 "콘텐츠에만 집중한 것이 패착이었어"라고 생각하기 딱 좋았거든요. 책은 서문이나 표지에서 '연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래, 콘텐츠를 잘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연결을 해야 해야 해"라고 생각이 들기 딱 좋아요. 누군가는 기성 언론이 콘텐츠에만 집중하는게 문제라며, 페북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리는 것도 봤는데...
책을 읽어보면 좀 달라요. 작가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안된다"고 여러번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회사 중 콘텐츠가 엉망인 회사는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넷플릭스, IMG, 십스테드 등등.) '연결'하면 뭔가 인터넷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 같지만, 이 책에서는 한 챕터를 털어 그 '연결'을 전혀 활용하지 않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연결'을 제대로 활용한 십스테드와 비교하면서요.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브랜딩과 마케팅, 콘텐츠 전략이 다 '연결'돼 있어 콘텐츠 보다는 '연결'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풀긴 했는데...이건 솔직히 작가가 야마 잡으려고 좀 갖다 붙인 느낌이 났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단계별 paywall 전략을 칭송했지만, 책에서도 뉴욕타임스 쯤 되는 콘텐츠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그 뉴욕타임스도 처음에는 hard paywall로 했다가 낭패를 봤었죠. 넷플릭스는 처음엔 '연결'로 시작했다가 오히려 회사가 잘 될때 콘텐츠 투자에 몰빵한 사례입니다. 읽다 보면 콘텐츠가 좋은 건 '기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누가 성공할까요? 스포츠매니지먼트 IMG도 타이거 우즈라는 좋은 콘텐츠가 있었고, 이 스타를 다른 비즈니스(시니어 클래식, 골프장 설계)로 '연결' 시켰다는 건데요. 무조건 '스타'에만 집중한 회사들은 잘 안됐고요. 글쎄요. 전 이런 설명 자체가 뭔가 '당위론'으로 읽혔습니다. 무조건 연결로 맞추려는 건 위에 썼듯이 좀 억지스러웠고요. 뭐랄까. "잘 하는 놈은 잘 한다" 정도랄까요.
'성공비결'이라면 전체의 성공사례를 관통하는 일관된 '비결'이 있어야 겠죠. 책에 그런 건 없었어요. "이 놈은 이래서 잘 됐고, 저 놈은 저래서 잘 됐다"는 사례가 많이 나와 있어서 좋았죠. 그리고 성공한 놈들이 내린 선택은 다 합리적이었고 업에 대한 이해가 깊은 상태에서 나온 선택이었어요. 위의 IMG도 골프라는 스포츠와 레저 수단에 대해 잘 이해한 것이었죠. "고민 많이 하고 실행한 기업이 이긴다"랄까요.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건강해진다"같은 얘기지만 세상에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 많지 않죠.
한국에 경성 콘텐츠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이런 저런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고민도 더 깊어지겠죠. 저도 더 고민해보려 합니다. 아직까지 나온 뉴미디어 중에 제가 가진 의문에 통쾌하게 답을 주는 서비스는 없었습니다. QUE도 아직은 그에 닿지 못했죠. 위에 언급한 A대표도 아주 끝까지 고민해 본 사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고민하다 보면 다른 잘 하는 기업이 그랬듯, 잘 할 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