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콘텐츠와 최고의 IT 전문가가 만났을 때.
전 세계 수 많은 미디어가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이 중 최고의 모범사례는 (미디어 업계 입장에서는 부끄럽게도)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주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사례입니다. 아시다시피 베조스는 2013년 워싱턴 포스트를 사재로 인수했습니다. (부럽습니다.)
최고의 IT 전문가와 최고 수준의 올드 미디어가 만나면 어떤 결과를 만들었을까요. 지난해 6월 하버드 케네디 스쿨 Shorenstein Center의 Dan Kennedy 교수가 논문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아래는 이 논문을 읽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원문을 직접 보고 싶으신 분은 https://shorensteincenter.org/bezos-effect-washington-post/ 를 참조하세요. (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지만, 정리를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콘텐츠
당연히 베조스는 콘텐츠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베조스의 놀라운 점은 포스트의 주인이 되고도 콘텐츠에 대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는 철학은 분명했습니다. (다시 한번 부끄럽게도) 베조스는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 "뉴스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허접한 콘텐츠"라고 정의내렸습니다. 그는 포스트를 인수한 이유 중의 하나로 "허핑턴포스트같은 허접한 매체들이 부상하는 게 안타까워서"라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기자를 늘렸습니다. 베조스 인수 이후 포스트는 기자 수를 140명이나 늘렸습니다. 현재는 800명 수준입니다.
IT 전문가로서 콘텐츠 활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바이럴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의 언론의 문제를 '낚시성 콘텐츠'로 지적한 데 대해 베조스는 "낚시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클릭하고 들어갔을 때 콘텐츠가 별로인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바이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 정치뉴스는 더 적게. 소비자, 과학, 건강 뉴스는 더 많게
- 생활밀착형 뉴스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존 언론의 카테고리 개념을 탈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치'가 마냥 중요하다는 인식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양은 많아야 한다.
- 그는 "콘텐츠의 수는 인터넷 뉴스 서비스의 성패를 가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수 많은 콘텐츠가 흘러가는 IT 환경에서 계속 콘텐츠를 유입시켜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4. 그래픽, 편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그는 레이아웃과 디자인에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사진과 비디오 콘텐츠가 많아지고 좋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비디오를 강조했습니다.
5. 로컬로는 안된다. National Media가 돼야 한다.
- 워싱턴포스트는 주로 워싱턴 지역 이슈를 많이 다루던 신문이었습니다. 베조스는 '전국지'로의 탈바꿈을 강조했습니다. 시장을 키우려는 전략입니다.
6. 대중과 엘리트를 동시에 타게팅하라.
- Financial Times 등 일부 유력지가 유가 독자로서의 잠재력이 있는 엘리트 독자층에만 집중한 것과 달리 베조스는 "대중을 놓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역시 사업가로서, 시장을 크게 가져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IT
베조스는 IT 적으로는 당연히 경영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참신한 결과물을 많이 내 놨습니다. 베조스가 온 뒤 포스트의 변화는 아래와 같이 요약됩니다.
1. 당연히 개발자를 늘렸습니다. 80여명의 개발자가 편집국에서 기자들과 함께 일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리콘밸리 레벨' 이라고 합니다.
2. 여러 종류의 앱을 개발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는 일반 뉴스앱과 큐레이션 앱을 분리했고, 태블릿 용 앱을 별도로 내놨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UX가 다른 만큼, 앱도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큐레이션 앱에서는 한 화면에 기사 하나만 노출하는 파격적 UI를 구현했는데, 이는 베조스의 주장이 적극 반영된 결과라고 합니다.
3.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영을 했습니다. 어떤 헤드라인을 웹페이지 톱에 올렸을 때 고객을 더 끌어들이는지 실험했습니다. 헤드라인 뿐 아니라 주제, 사진, 글 길이 등 다양한 변주를 주면서도 고객 반응을 조사했습니다. 그렇다고 PV에 집착한 건 아닙니다. 베조스는 PV를 '게으른 지표'라고 싫어했다고 합니다. 반면 뉴욕타임스와 포스트의 기사를 브랜드를 가린 상태로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어떤 기사가 더 많이 보여졌는지를 비교하는 식의 실험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결과 나온 지표를 'lead measure'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4. 베조스는 "뉴욕타임스와 경쟁하지 말고 버즈피드, 폴리티고, 복스랑 경쟁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뉴욕타임스를 이길 수 있다는 역설적 설명입니다. 포스트의 맨파워가 뉴욕타임스보다 부족한 만큼 다른 어프로치를 통해서 경쟁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5. IT를 활용해 다양한 툴을 개발했습니다. 팝업 광고 같은 걸 원천 차단했습니다. CMS나 광고 툴은 직접 개발해 다른 언론사에 판매하는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이 'ad blocker'를 많이 쓰자, 'native ad'를 적극 키우기도 했습니다.
6. Facebook 등 Social Media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다만 Social Media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를 이용해 포스트의 플랫폼으로 독자를 유입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7. 본인이 갖고 있는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아마존과 포스트의 고객 데이터를 합쳤고, 아마존을 통해 포스트의 뉴스레터를 구독하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경영
과거에도 보스톤 글로브 등 IT 거물이 인수한 매체가 몇몇 있었습니다.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IT+언론'의 기계적 결합이 뉴미디어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방증입니다. 베조스가 포스트를 성공시킨데는 특유의 경영 스타일도 한몫했다는 분석입니다.
베조스라고 인수 당시 최악의 상황이었던 포스트를 한번에 살릴 수 있는 묘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엄청 많은 걸 시도했고, 어떤 건 성공했고 어떤 건 실패했을 뿐입니다.
그는 10년 넘게 적자 상태의 아마존을 경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문업계의 몰락을 결과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봤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베조스는 비전을 '수십년 단위'로 짠다. 그게 다른 IT 경영인과 베조스의 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스스로가 엄청난 베타테스터였습니다. 앱이 나올때 마다 스스로가 지독할 정도로 쓰면서 단점을 집어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속도에 예민했는데, 포스트의 한 개발자는 "그는 상상할 수 없이 빨리 페이지가 뜨길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베조스의 공로는 아닙니다만, 베조스 인수 전의 포스트는 지분구조가 복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조스가 인수한 이후 개인소유가 되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 것도 포스트의 성공에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성과
베조스가 인수하고 어느정도의 개혁이 끝난 2015년 한해의 성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웹사이트 MAU 6690만명(전년대비 59% 증가)
-모바일 MAU 5600만명(전년대비 61% 증가/ 이 중 45%가 밀레니얼 세대)
-월 Total PV 8억9000만뷰
Axios의 지난 1월9일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포스트는 2016, 2017년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유료구독자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고 하고요. 기자가 늘어나면서 편집국 공간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뉴욕타임즈는 HQ의 규모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고 하더군요.
* 감상평
한국 언론은 투자에 소극적입니다. "해봐야 안된다"는 패배감이 팽배합니다. 비단 한국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미디어 시장 전체가 그렇습니다. "시장이 작다" "젊은 사람들이 뉴스를 안본다" 등등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잘하면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패하는 건 환경 탓이 아니라 '잘 못해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