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식은 좋은 것일까

알프레드와 다니엘의 사례

by HEROINES

* 이 글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다분이 일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일반 이론 및 다른 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독교적 신앙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권장하는 말로도 비아냥대는 말로도 많이 쓰입니다. 권장하는 쪽은 "마치 회사의 주인인 것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성공한다"는 식입니다. 비아냥대는 건 요즘 유행하는 짤 처럼 "주인처럼 일할테니 주인만큼 돈 주세요"하는 식이죠.


저는 둘 중 어느것이 옳다...라고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무슨 일을 하든 '주인처럼' 하는 스타일입니다. 돈 받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그렇다고 막 성공욕구가 센 것도 아닌데. 뭘 하든 약간 '올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애정을 갖고 좋아하는 일에는. (이런 경향을 가진 데는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10여년 간은 이같은 성격이 개인적으로도, 조직의 측면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자 때는 내가 발제하고 취재하고 쓰기 때문에, 일의 성격이 '1인 사업자'와 비슷해서 그랬을 겁니다. 바로 직전 직장에서는 주인은 아니었지만 사업에 대한 주도권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서 역시 주인 비스무레하게 일을 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태도를 갖고 사는 것에 대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직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 아니고 제 스스로 "이게 문제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지금의 회사는 소통도 잘 되고,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인정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걸 제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까요.


첫 신호는 '몸' 이었습니다. 몸에서 전에 겪지 못했던 이상 신호가 잡히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몸이 망가진걸까"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괜찮으니까요. 아마 스트레스가 원인이었겠죠.


여튼 그 신호가 올 때는 좀 무서웠습니다. 인터넷에 증상을 찾아보니 결론은 "그러다 한방에 훅 간다" 였거든요. 그렇다보니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일을 잘 하냐...면 그건 아니지만, 여튼 고민은 많이 하는 편입니다. 사업에 대해 무슨 일이 주어지면 정말 계속 고민합니다. 이런게 일종의 주인의식 이겠죠. 꿈에도 나오고, 애들 보면서도 생각하고.


무슨 노벨 물리학상 연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하면 나름의 답을 내리게 됩니다. 우주적 정답은 아니지만, 원래 사업에는 우주적 정답은 없기 때문에,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답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최소한 제 틀 안에서는 그럴듯 합니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논리를 만들고 나면, 주로 그 논리를 강화하는 데 신경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만든 논리적 구조에 '애정'이 생깁니다. 때로는 애정을 넘어 "이렇게 돼야 한다"는 당위까지 마음 속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틀' 안에 들어오면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 논리는 '내 틀'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아예 시작이 다르거나, 생각의 방향 혹은 철학이 다르면 '내 틀'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오답은 아닙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이 더 나을 때도 있죠. 내가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특히 사업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상대가 '그르다(wrong)'면, '그르다'는 확신이 들면, 싸우면 됩니다. 그게 상사든 부하든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다른 방향에서의 정답'일 경우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내가 생각해 온, 만들어 낸, 내가 사랑하는 '나만의 논리 왕국'을 저 멀리 둔 채 다른 얘기를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결국 '나만의 논리 왕국'이 아닌 다른 길이 조직 차원에서 선택된다면, 내가 그 길이 충분히 일리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낫다고 인정을 하는 경우에도 적지 않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정성껏 몇일 밤을 새서 요리를 준비해 갔는데, 결국 그 요리는 내 연인의 건강에 좋지 않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요리가 연인에게 더 적합한 상황....이랄까요. 이해는 되지만 상처는 받는. 그런 상황이 되죠.




보통 이럴 때 하는 '최악의 선택'은 "내가 열심히 고민해봐야 아무 소용 없네" 식의 skeptical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은 가는 침묵의 길'을 선택하는 거죠.


그건 조직에게도 내게도 이득이 안됩니다. 그런 식으로 회사를 다니면 내가 즐거울 이유가 없고, 조직이 나를 좋아할 이유도 없을 테니까요. ('나만의 작은 논리 왕국'을 만들때는, 적어도 만드는 순간에는 재미가 있죠)


그렇다고 매번 고민과 허탈함을 반복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조직과 '싱크'를 맞추는 것도 이 과정에서 필요하고 그래서 조직이 방향과 내 고민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100% 싱크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또 90%이상 싱크를 맞춘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10%에 대한 고민 중에 위에 설명한 상실감은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10%를 위해 내 고민의 100%를 쓸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프레드가 되기


저는 배트맨에서,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영화들에서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를 좋아합니다. 알프레드는 배트맨을 Master(주인)라 부르며, 모든 행동을 배트맨을 위해서 합니다. 즉 "내가 나가서 악당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겠다"가 아니라 "나가서 악당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Master를 돕겠다" 입니다.


즉 Master(CEO가 됐든 누가 됐든)를 돕는데 생각을 집중한다는 뜻 입니다. "거참 새로운 걸 만들지도 못하고 불쌍한 삶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뭐 그게 싫으면 내가 사장 되든가 했어야 하는 것이고...사실 진짜 능력있는 집사는 Master 이상의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알프레드는 배트맨을 Master라 부르지만, 배트맨은 대부분 알프레드가 시키는데로 하고 또 알프레드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뜯어보면 누가 '주인'이고 '집사'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죠. 또한 알프레드는 주인이 정말 스스로를 해칠 만큼 옳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는 철저하게 반대하고, 심지어 주인을 떠나기도 합니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 중 '다크나이트 라이즈' 참조) 알프레드는 배트맨을 사랑하면서, 배트맨을 잘 알고, 매우 현명합니다.


이렇게 하면 의사결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아니면) 난 그저 배트카를 만들고, 수트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물론 내 사업처럼 생각할 수 없으니 창의력이나 주도적인 업무의 폭은 좁혀지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모드로 살면 퇴근한 뒤에도 내내 회사 생각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Master를 도울 수 있는 순간에만 노력을 집중하면 되니까요.




다니엘 되기


성경의 다니엘도 이 문제를 고민하는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 다니엘은 '성경 최고의 2인자' 입니다. 조국을 침략한 왕국의 총리로 일했습니다.


일본이 한국 점령했을 때, 일본가서 총리한 셈인데. 그런데 일본에서도 조선의 문화를(신앙을) 고집한 케이스였으니 매국노는 아닙니다. (사자굴에 빠진 다니엘 사건) 그저 너무 능력이 뛰어났을 뿐이죠.


그러나 다니엘 입장에선 여하튼 곤욕이었을 겁니다. 침략 국가의 정책을 세우고, 그 나라가 잘 되게 하는 전략을 짜는 건 어찌보면 조국의 식민 체제를 연장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다니엘은 왜 열심히 일 했을까요.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시를 통해 언제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하고 부흥하게 될 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운 침략 제국의 총리 짓도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체험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었으니까요.


회사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니엘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정답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조금 상처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더 크신 주님의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물론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난 제 삶만 돌이켜봐도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뺀다고 해도 '진인사대천명'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의외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쉽게 지치고, 혹은 쉽게 회사의 '안티'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처음에 그만큼 회사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 받았다고 나가떨어지거나 '안티'가 돼서는 자신에게 이득이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게 right or wrong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선택'의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더 발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바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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