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더리탕을 끓일 때의 어려움

머리가 너무 머리다

by HEROINES

서더리탕에서 제일 힘든 부분은 손질이다. 머리가 너무 '머리'기 때문이다. 덜렁거리는 눈알을 보고 있으면 사람 머리를 반으로 쪼개놔도 비슷한 모양이겠지 싶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




지난 주말엔 가락시장에서 회를 샀다.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다고 해서다. 어떤 회를 먹을지 고민했다. 보통 가락시장에선 '모듬회'를 시킨다. 모듬회를 시킬 때 좋은 점은 여러가지다. 일단 여러 회를 먹을 수 있다. (나는 연어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좋아한다) 또 모듬회의 경우 필렛을 떠 놨다가 조금씩 잘라서 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숙성이 돼 있다. 막 잡은 생선은 사후 경직 때문에 식감이 좋지 않다.


그날은 큰 도미 한마리를 통째로 잡았다. 한마리를 잡는 것의 장점도 있다. 모듬회에는 뱃살 같은 좋은 부위는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마리를 잡으면 그 생선의 뱃살은 모두 먹을 수 있다. 또 여기는 등, 여기는 꼬리, 여기는 배 식으로 하나씩 먹으며 맛을 비교할 수도 있다. 한마리를 잘 음미하면서 먹으면 여러 종류의 회를 먹는 것 못지 않다. 그날은 점심 때 사서 저녁때 먹을 예정이어서, 숙성도 문제 없었다.


무엇보다 한마리를 통째로 잡으면 서더리가 좋다. 모듬회를 시키면 모듬회 용으로 썰어놓고 남은 생선들의 머리 등을 매운탕 감으로 준다.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덜 신선하다. 여러 생선이 섞여 있어서 매운탕을 끓여도 맛이 없다. 살도 많지 않다. 그런데 한마리를 통째로 잡으면 서더리가 신선하고 살도 많고 맛도 좋다.




서더리탕은 쉽다. 물에다 멸치와 무를 넣고 끓이다가, 매운탕 양념을 넣고 한번 더 끓인다. 매운탕 양념은 만들어도 좋지만 수산시장에서 주는 걸 써도 충분하다. 그리고 생선을 넣고 마늘 다진 것 조금 넣고, 청주가 있으면 넣으면 좋다. 수산시장에 단골집을 마련해 놓으면 국물용 조개나 새우를 조금 넣어준다. 같이 넣고 끓이다가 생선이 익으면 미나리나 콩나물을 넣고 조금 두면 끝이다.


문제는 손질이다. 머리가 너무 머리기 때문이다. 덜렁거리는 눈알을 보고 있으면 사람 머리를 반으로 쪼개놔도 비슷한 모양이겠지 싶다. 반으로 쪼개진 입술은 너무 입술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


수산시장은 생선에겐 지옥일테다. 거의 움직일 곳도 없는 수조에 갇혀 동료들의 피비린내를 맡으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수산시장에 다녀오면 가끔 감옥에 가는 꿈을 꾼다. 하루는 버틸만 하지만 더 이상 자유가 없다는 걸 깨닫고 몸서리 치면서 깬다. 더군다나 이 생선들은 태어날 때 부터 인공적으로 태어나 좁은 곳에서 사육된 녀석들 아닌가.


오직 나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 이대로 머리를 버리면 그들의 죽음을 머리만큼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을 튼다. 비린내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피가 굳어있거나 내장이 남은 부분을 씻어낸다. 남은 비늘도 털어낸다. 머리의 구석구석에 손가락을 넣어 씻는다. 덜렁거리던 눈알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오래 끓이고 접시에 담아도 머리는 여전히 머리다. 아내는 먹지 않는다. 국물은 좋다. 역시 서더리탕은 한 종류의 생선으로 끓이는 것이 맞다. 비린내가 덜하다. 청주 덕도 봤다.


젓가락으로 머리를 분해한다. 어두일미의 뜻은 애매하다. 머리살에는 기름기가 없다. 그렇다고 등살처럼 퍽퍽하진 않다. 쫄깃한 편이다. 그렇다고 일미는 아니다. 맛은 뱃살이 낫다. 그래도 국물과 살과 밥을 먹으면 충분한 식사다.


눈이 다시 덜렁거린다. 이 참에 떼어낸다. 입에 넣는다. 고소하다. 눈알까지 씹으려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독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입술도 입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들부들하니 맛있다.


그렇게 단백질과 탄수화물과 섬유질과 염분이 적당히 섞인 한끼를 든든히 먹었다. 회로 먹은 한끼도 한끼고 서더리로 먹은 한끼도 한끼다. 입의 쾌감은 덜하지만 반나절 나를 움직이게 하는덴 전혀 문제가 없다. 아내는 생선을 먹진 않겠지만, 나중에 국물을 덜어 라면을 끓어주면 먹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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