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힙합을 듣고 울컥한 이유
힙합을 처음 접한건 1998년, 1999년 즈음이다. 가판대 스포츠신문 1면 톱에 '괴물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조피디의 1집이 소개돼 있었다. 그게 듣고 싶었는데 돈이 아까워서 조피디 1집을 사서 친구 김모에게 선물로 준뒤 빌려서 안돌려주는 양아치 짓을 했다.
조피디라고불러, 노래도곧잘불러, 곧너도따라불러, 그리고내가좋아지면언제라도불러
로 시작하는 조피디 1집을 매우 많이 들었다. 지금도 대충 모든 트랙의 가사를 다 외운다. 영화에선막*새끼막*까그러던데. 찌르는듯한 가사와 욕설이 신기했다.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학창시절과 감정적으로 맞닿았을수도 있겠다. 힙합이 뭔지도 몰랐지만 마침 한국에서 힙합의 싹이 틀 때였다.
2000년에 친구 정모가 힙합동아리를 만든다고 해서 같이 가서 창립멤버가 됐다. 한국 대학계에선 거의 처음이었던(누가 진짜 처음인지는 모른다) 한국외대 힙합동아리 훕스 도비다. MC가 원래는 Microphone Checker의 약자지만, 위대했다던 라킴이 Move the Crowd라고 정의내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대중을 움직일 수 있을때까지는 스스로에게 MC를 붙이지 않겠다는 개소리를 했었드랬지.
미국에선 영어에 능통한 드렁큰타이거가 날라왔고, 한국에선 나우누리 천리안 등을 중심으로 래퍼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누가 진짜 힙합은 미국이고 갱스터고 막 그래서 그걸 들었다. 누구나 그랬듯 닥터드레와 투팍, 비기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나름 독실한 크리스챤인 내게 마약 섹스 살인 폭력으로 얼룩진 가사가 거슬렸다. 그래서 닥터드레의 2001 앨범을 instrumental로 사서 들었다. 당시 돈으로도 2만원이 넘었는데, 뭔가 나만의 곤조를 지키는 것 같았다.
가사가 있는 걸 찾다보니 시카고 쪽은 뭔가 다르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커먼이나 '모스뎁 앤 탈립콸리의 블랙스타' 같은걸 찾아서 들었다. 로렌힐도 그러다 만났고, 인생 명반인 '로렌힐 엠티비 언플러그드'의 DVD도 샀다. 수천번을 봤고, 지금 아내를 처음 만나서 꼬실 때도 써먹었다. 지금 보니 당시 시카고의 얼터너티브 힙합은 말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였고, 미국에서도 그다지 안유명한 애들이었다. 근데 그걸 한국에서 별 생각도 없이 꾸역꾸역 찾아 들었다. 그때는 타워레코드에서 다 팔았다. 그러다 에미넴도 듣고 그랬으나, 영어는 들으면서 해석이 안되는게 문제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언더도 조금 움직였다. 가리온 주석 사이드비 등등. 당시 홍대에 미국에서 대학나왔다는 애가 랩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렸고, 그게 타블로였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국힙 희대의 명반 대한민국 2001이 그때 나왔고 셔니슬로우의 moment of truth를 또 닳아 없어질때까지 들었다.
아직 에미넴의 8마일 영화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진짜 2001 instrumental을 들으며 버스 뒷자리에서 가사를 쓰곤 했다. 아무도 안쓰는 라임을 써보리라 다짐하며 국어사전을 뒤지던 때도 이 즈음인데, 그때 지금은 술자리에서 스스로를 희화 시킬때나 쓰는 '각' 라임의 열여섯마디를 완성했다. 모든시각 에서느껴지는 편견 다망각 지각 조차할수없는냉각 된분위기 더이상참을수없는시선들의나열속에지금내가부각 돼야될시각...
뭐든지 하다보면 한두번의 정점은 오기 마련인데, 한번은 대학 축제때 공연이었다. 윤도현 다음무대여서, 그냥 누가 나와서 동요만 불러도 환호할 준비가 돼 있는 청중들 앞에서, 날로 먹는 공연이었지만, 여튼 6000관객 앞에서 때리지마 그러지마를 외쳤다. 사회비판랩을 하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또 하나는 친구 정군의 피처링으로 기독교방송의 창작복음성가제 본선 무대에 선 것이었는데, 뭘 입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진짜로 아버지 셔츠를 입었다. 아버지가 덩치가 크시기 때문이다. 정군은 캉골 모자를 사서 썼다.
랩으로 먹고살아야지 까지는 솔직히 생각 안해봤지만, 부업으로 계속 해 볼까 정도는 나름 고민해봤다. 이 생각은 윤미래의 랩을 들으며 깨졌는데, 메타의 가사가 수천배 좋았지만 윤미래의 랩은 말에 리듬을 더한 것이 아닌 음악이었다. 세상 모든 분야가 그렇듯 성공하려면 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겸비돼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고, 내가 이걸로 돈 벌 가능성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2005년 어린 나이에 종합상사를 들어갔을때 나는, 눈에 띄는 옷을 입는, 나는 너무 잘났는데 조직이 나를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노래방에서 랩을 하는 전형적인 "허허, 요즘 젊은 친구들은"에서 요즘 젊은 친구들 이었다. 뭐 막 핸드폰 이런게 창궐하며 말세였고, 그렇고 그런 가라오케 레파토리에 질린 어른들에게 랩은 뭔가 요즘 젊은 친구들을 이해한다는 허세감을 심어주면서도 흥을 돋울 좋은 도구였다. 접대를 하며 랩으로 시작해 땡벌로 끝나는 레파토리를 그때 완성했고, "내가 너라면 윗통 벗는다"는 모 부장님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그때부터 힙합을 잘 듣지 않았다.
유병재가 얼마전 '탑골힙합 다시부르기'라는 코너를 유튜브에서 연재했다. 셔니슬로우의 moment of truth를 불렀다. 꼰대도 아니고 탑골이라니. 유병재는 힙덕이고, 그 코너에는 리스펙이 담겨있었지만, 나는 탑골힙합 다시부르기를 들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찾아보니 주석과 가리온은 한물간 가수들처럼이 아니라 진짜 한물가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소규모 콘서트를 했다. 무슨 늙고 이름없는 트롯 가수가 지방 나이트에서 공연하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갓 졸업했는데 랩 되게 잘한데라던 도끼는 한국 힙합의 왕이 됐다가 이제 저물고 있다. 수많은 래퍼가 내가 왕이라는데 그럼 왕은 누군지 모르겠다. 드렁큰타이거는 다시는 정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라임의 왕' 피타입은 쇼미더머니에서 개쪽당하고 랩을 그만두고 한 회사에 마케터로 취업해서 살고 있는데 가정을 지켜야 하고, 한국은 레전드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나도 지금 마케팅을 한다. 지역배틀을 쓸어담는다던 싸이먼도미닉이 부자가 됐고, 이센스는 최근에도 발군의 앨범을 냈지만, 여전히 나는 가리온의 2집 같은 탑골힙합을 다시 듣고, 자주 울컥한다. 셔니슬로우는 아직도 1집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