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서 나쁘지 않은 점
나이가 들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인생이 귀찮아 지는데, 대표적인게 '털'이다. 많아지라는 머리털은 줄어드는데 콧털은 왜 늘어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뭐가 튀어나와 있다. 가끔 튀어나온 놈이 검지 않고 희면 희극 한편이라도 본 듯이 빵 터진 와이프를 볼 수 있다.
어떤 분의 분석에 따르면 '학대에 따른 기형'이라고 한다. 습관처럼 콧털을 뽑다 보니 거기서 유전자 변형이 생겨나 특이한 종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가끔 지저분한 '눈썹'은 또 왜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정신차리고 거울을 보면 뭔가 두꺼운 눈썹 하나가 생겨서 자기 혼자 역방향으로 자라고 있다. 이 역시, 머리털만 얇아지고 다른 것들은 두꺼워지는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진화란 필요에 의해 생기는 것 아닌가. 인류는 머리털을 원하는데 왜 머리털이 더 강하게, 두껍게 진화한다는 얘기는 들리질 않는가.
전동콧털제거기로 일주일에 한번씩 강박적으로 밀어버린다. 미세먼지의 시대에 콧털이 주는 순작용도 있겠으나, 하나는 포기한다. 브라운의 면도기에는 눈썹 손질기도 달려 있어서 툭 튀어나온 눈썹을 제거해준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사실 머리카락이 제일 큰 문제다. 조금만 이발을 미루면 지저분해진다. 나는 특이하게 위는 괜찮은데 옆머리의 3할 정도가 새치다. 머리가 길면 갑자기 새치가 두드려져 보인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3주, 길어도 한달에 한번은 이발을 해 줘야 한다. 왠만한 것에 돈을 안쓰는 나지만, 이발 만큼은 '럭셔리'를 고집하는 내게 3주에 한번은 재정적으로 아프다.
털들 뿐이랴. 또 다른 것이 아저씨 냄새다. 이건 아이들이 먼저 파악한다. 그 냄새마저 사랑해주고 아빠한테 온몸을 비비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울 뿐이지만, 암튼 비빌건 비비고 말은 분명히 한다. 냄새난다고.
어릴 때 보다 굳이 몸에서 냄새가 더 날 이유는 딱히 없다. 사실 어릴 때 더 많이 날거다. 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니. 아마 아저씨 냄새의 근원은 '자신에게 신경쓰는 시간이 줄어든 것' 일테다. 입던 옷을, 오래 입고, 자주 갈아입지 않다 보니. 또 체력이 약해져서 집에 와서 씻는 대신 자는 것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술자리도 원인일 테다. 여튼 대단히 듣기 싫은 소리여서 아침마다 온 몸을 박박 밀어 닦는다. 이 경우 피부가 건조해지는 부작용이 생기지만, 역시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피부 얘기가 나와서 말이니 얼굴도 문제다. 근 14세부터 나를 괴롭히던 여드름은 여태도 살아있는데, 당시에는 호르몬 불균형이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체내 만성염증이 문제라고 유튜브에서 봤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지식을 그대로 믿기 보다는 저널리스트 출신 답게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병원 진단을 받아봐야 하는데, 그런걸 스킵하고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영양제를 산다. 영양제도 여간 비싼 것이 아닌데, 나같은 호갱은 오메가 3를 하나 사도 직구까지 해서 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열하자면 이 뿐이랴. 마지막으로 체력을 언급해보자. 일주일만 운동을 안하면 몸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음주에 대한 저항성도 점점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몸이 더욱 우는 소리를 한다. 아직 젊은 동료들보다 스스로의 텐션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해봤지만, 아마 억지로 버티는 것일게다.
여튼, 나이가 들면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콧털을 관리하고 눈썹을 관리하고 몸을 박박 닦고 한달에 한번씩 이발을 하는 건 매우 귀찮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조금이라도 빨리 습관을 들이는 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또 아침마다 이래 저래 손질을 하다 보면 뭔가 경견한 느낌도 든다. 군인이 군화를 닦듯, 스스로를 손질하고 전장에 나간다는 느낌이다. 어떤 행위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위에 언급한 많은 것들의 원인은 '술'에 있다. 술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안씻고 자기도 하는데, 그러면 옷과 몸에 냄새가 배어 있다. 그걸 누적해서 다시 입으면 그게 아저씨 냄새가 된다. 술을 마시면 운동을 안하게 되고 그러면 피곤하고 그러면 머리, 콧털, 눈썹관리도 소홀하게 된다. 특히 술에 대해서 요즘 가장 싫은 것은 말이 많아지는 것인데, 젊었을 때 술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면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은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한창 때 보다는 술을 줄이거나 적어도 '줄여야지'라는 말을 스스로 여러번 하고 있다. 빈도가 약간이나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술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보니 기도를 늘리는 방향도 시도하고 있다.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 하나를 늘리면 하나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언젠가는 이런 생활패턴이 갖춰지지 않을까. 술을 매우 적게 마시고 아침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콧털을 깎고 눈썹을 만지고 몸을 닦고. 3주에 한번씩 술 안마신 돈으로 이발을 하고. 옷은 아내가 귀찮겠지만 자주 내놔서 낡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대신 좋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살 만큼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운동을 하고 몸을 유지해서 옷을 새로 살 필요자체를 없애버리고. 크게 나쁘진 않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