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발을 딛고 하늘을 보기
공중파 방송에서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일을 하던 시절, '삼분의 일'이라는 회사를 소개받았습니다. 매트리스를 만드는 스타트업 입니다. 이 회사는 선진국에서는 보편화 돼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쓰지는 않는 폼 매트리스를 파는 회사였습니다. 한국에도 외산 제품이 수입돼 있는데, 그건 굉장히 비싼데, 이건 성능은 비슷한데 값은 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공중파 방송이었으므로, 기업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했습니다. 몇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창업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요" (저랑 같은) 상사맨 출신이라고 답이 왔습니다. "엥, 상사맨이 무슨 매트리스를 만들어? 수입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매트리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좋은 매트리스인지 판명을 할 방법은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스타트업이 제게 자기 회사를 소개해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제가 좋은 기업 나쁜 기업을 가르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매출(IT 스타트업이라면 최소한 AU). 일정 규모 이상 시장의 선택을 받았다면 최소한 사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분의 일이라는 회사의 매출을 대략 들었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걸 팔아서 이 돈을 번다고?" 매출 정확한 것 맞냐고 수 차례 확인한 뒤 방송에 소개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저도 매트리스를 사야 해서, 이 방송 했던 생각이 나서 삼분의 일 체험관을 찾아갔습니다. 보니까 폼 매트리스라는 것은 일종의 스폰지를 여러겹 겹쳐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스폰지를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기술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었지?" 생각을 하다가 창업자가 상사맨이라는 것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기본적으로 무역하는 사람들은 해외에 어떤 제품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없으면 재빨리 수입해서 돈을 법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이 회사 창업자는 수입하는 대신 한국에서 싸게 만들었구나. 마치 수입하듯 제조했구나" 상사맨의 '촉'이 발동해서 성공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견입니다.)
또 세월이 흘러, 매트리스를 또 살일이 생겼습니다. 이 전에 결국 삼분의 일 제품을 샀고 지금 잘 쓰고 있어서 다시 한번 삼분의 일 사이트를 검색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는데, 페이스북에서 대충 세어봐도 십수개의 매트리스 회사 광고가 떴습니다. 약간씩 이름이 다를 뿐 이들 매트리스 회사들의 카피나 후기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모두 "해외 제품보다 훨씬 싼 가성비"를 내세웠고, 무슨 예수님이라도 만난 듯 인생이 바뀌었다는 별 다섯개짜리 후기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삼분의 일 보다도 훨씬 싼 제품도 많았습니다. 나름 매트리스를 최근에 사고 공부해 본 입장에서도, 도저히 브랜드별 차이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삼분의 일의 성공을 보고 그새 유사 업체들이 많이 생긴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은 전후 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죠. 23년 전통 원조집이 과연 이 거리의 480개 해장국 집 중 어디냐..와 비슷한 얘기일 것 같습니다) 수 없이 나오는 페북 광고를 보면서 "삼분의 일이 사업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들었던 삼분의 일의 매출을 다시 떠올려보면, 여전히 놀라운 숫자입니다. (이제는 제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삼분의 일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탁월한 기술력? 여전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23년 전통 원조집...) 아마 타이밍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스프링이 아닌 폼 매트리스를 원하는 그 어떤 시점에, 기가 막히게 적당한 가격으로 출시를 해서 인기를 끈 것이죠. 물론 pricing, 훌륭한 품질로 만들어낸 능력, 그걸 잘 알린 마케팅 등도 잘 한 것이고 성공 비결의 일부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그 회사 창업자는 "이 시점에 폼 매트리스를 내 놓으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타이밍을 찾는 무슨 산식을 알았던 것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나름의 시장 분석이야 했겠지만, 그거야 누가 안할까요. 그리고 시장 분석 결과는 얼마나 자주 틀릴까요.
그럼 뭘까요? 감? 하나 더 한다면 그것을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창업해서 모든것을 불사른 용기? 두번째 이유가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모든 창업자들이 같은 용기를 갖고 있을 것이므로 그건 성공 방정식에서 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감'인데... 이건 거의 '운'이라는 단어와 등치되는 느낌도 듭니다. (위에 제가 '촉'이라는 표현도 썼네요)
그러나 그렇게 운이 좋았음에도 본질 경쟁력이 없으면 수 많은 경쟁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시장 경제겠죠. 그렇다면 진짜 성공하는 사업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본질 경쟁력"과 "기가막힌 타이밍"을 둘 다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남들은 갖지 못한 경쟁력이 있어도, 타이밍이 안맞으면 안되는 게 사업이고. 타이밍이 맞아도 또 본질 경쟁력이 없으면 또 쉽지 않은게 사업이고. '본질 경쟁력'이라는 건 그나마 노력과 뭔가 비례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타이밍은 노력이나 능력과 비례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애매합니다.
촉, 감, 운 이런 것은 그나마 '경험'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듭니다. 그 필드에서 계속 구르다보면 "아, 지금이 뭔가 변화하는 때인가?" 이런 걸 알 수 있겠죠. 그러나 전혀 연관없는 업종에서 일하던 분이 다른 분야에서 창업해서 대박나는 경우를 보면 꼭 경험이 해답은 아닌 것 같고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해당 도메인에서의 경험도 중요하고, 남들은 못 따라올 본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러면서도 기가막히게 '운때'도 잘 맞아야 하고.
누군가 "발은 땅을 딛고, 눈은 하늘을 향해야 한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멋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걸 문자 그대로 곱씹어 보면 "발가락을 기민하게 움직이고 발바닥 세포을 최대한 민감하게 해서 땅의 움직임을 계속 캐치하면서도, 눈은 이 땅을 딛고 갈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엄청 현실적인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잘 되는 사업은 왜 잘 되나"를 생각하다가 써 본 잡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