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떠나는 것이 아쉬워 영화를 봅니다 #2
"외설적이라고 하기에는 아름답고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외설적인"
영화가 시작되면서 분위기에 취하다가
잘생긴 티모시 샬라메에 놀라다가
둘의 키스신에 당황하다가
아버지와의 대화 장면에서 대사를 받아 적다가
엔딩에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1. 분위기에 취하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촬영지는 '이탈리아 크레마'라는 작은 동네다. 감독님은 크레마 선정 이유를 '자연스러움' 때문이라고 하시는데 실제 감독님이 살고 있는 곳이 크레마다. 밀라노와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라고 하는데 지난 유럽 여행 때 미리 이 영화를 접했다면 방문해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영을 하러 가자는 올리버의 말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티모시. 그리고 노랑, 빨강, 초록 색 수영복을 차례로 보여준다. 사실 이 수영복이 왜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같이 수영할 수영복을 세심하게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이다음 장면에서 티모시는 전혀 다른 수영복을 입고 있어서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색감은 참 이쁘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을 모아 보면 색감이 도드라지는 영화가 많다.
'마지막 황제', '문라이즈 킹덤', '라라 랜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미드나잇 인 파리',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을 좋아한다. 내용도 좋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꿀렁꿀렁거린다. 마치 여행 가고 싶게 만든다.
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들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다. 마치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름으로써 자기가 자신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만큼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사실 한국 감성은 아닌 것 같다. (내 여자 친구를 바라보며 세호야!라고 부르면 화날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고 이 영화의 핵심이자 제목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네이버 평론가 평점을 한 번씩 본다. 평론가들의 5~6줄의 글도 있지만 한 줄로 요약한 문장을 보면 가끔씩 감탄이 나오는 문장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2시간가량의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부럽다. 광고대행사 하우즈 인턴 시절 대표님께서는 매주 과제를 내주셨다. 그중 하나는 영화 카피 과제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감정을 한 줄로 요약하고 서로 어떤 영화인지 맞춰보는 시간이었는데 많이 애 먹었던 기억이 있다. 머리에 허세가 가득차서 문장에 힘이 들어갔고 과한 표현이 들어갔으며 어떤 문장은 너무 추상적이라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대표님도 당시 인턴 모두의 카피를 칭찬해주시지 않았다.
당시 대표님이 예시로 말씀해주셨던 카피는 '공복에 보지 말 것'. 바로 '아메리칸 셰프'의 카피였다.
듣는 순간 어떤 영화인지 상상이 가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어찌 되었든 좋은 한 줄을 본 것 같아 올려본다.
이용철 평론가님이 별 4개를 주시면서 쓰신 한 줄이다.
'여름이 지나가길 바랐던 난, 계절이 끝났을 때 울고 있었네'
처음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자꾸 여름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덥고, 습하고, 짜증 났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둘의 여름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가고 끝내 엘리오는 눈물을 흘렸다.
3. 마지막 아버지와의 대화
사실 이 영화를 가장 좋게 봤던 이유는 엘리오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 때문인 것 같다. 퀴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마지막 대화는 꼭 봤으면 좋겠다. 올리버와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온 엘리오는 힘들어했고 아버지는 엘리오와 대화를 나눈다. 아들이 게이인 것을 눈치챈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한 번 쭉 보고 다시 돌아와 메모를 했다.
자신이 비참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따뜻한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나는 네가 부럽구나."
"우리는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지금 느끼는 아픔, 슬픔을 그걸 없애지 마라. 물론 기쁨도."
"시간이 해결할 것이지만 억지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느껴라"
고3 때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의 부모님은 "공부나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이별했을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연인이 아닌 그냥 친구일 뿐이다. 깊게 생각하지 마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나는 이별하고 아픔을 느끼는 법을 몰랐고 사랑하는 법을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감정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낭비라고 한다.
늘 빨리 잊는 게 효율적이라고 배웠는데 오히려 감정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낭비라고 한다.
내 미래의 아들과 딸들은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감정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