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yu - Quest.
서브컬처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린시절 한 번쯤은 JRPG장르의 게임을 즐겨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추억속 게임의 세계를 마치 진짜 그 장소에 다녀온 것 처럼 여기고 그리워하곤 합니다. 그러한 세계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오라고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 <Quest.> 음반입니다.
JRPG 하면 무엇이 연상되시나요? 환상과 전설이 살아 숨쉬는 대륙, 그곳에 자리한 비밀이 가득한 왕국, 드넓고 푸른 거대한 초원, 마법과 요정의 생생한 숨결, 수상하지만 지혜로운 노인. 그리고 그러한 미지의 세계를 설렘과 모험심을 담아 누비는 주인공 용사의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 음반은 그러한 JRPG의 감성을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고밀도로 응축해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일단 <Quest.> 라는 제목부터 이미 당연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사 주인공이 미지의 공간에서 주변인들에게 ‘의뢰(Quest)’ 를 받아 시작하는 것이 JRPG의 기본 서사이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음악의 전반적인 멜로디의 사용과 전개가 우리가 어린시절 자그만 양손을 분주히 놀리며 열중하며 했던 게임의 세계를 연상시킵니다. 자켓 아트의 소녀 역시 JRPG 게임속 세계를 우리에게 안내하는 길잡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뢰를 받아 시작하는 모험, 모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세계의 진면모, 환상이 살아 숨쉬는 원더랜드, 초원에 피어있는 애잔한 꽃말을 지닌 꽃 한 송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필멸의 운명을 지닌 환상체…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이 단지 2진법의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서 진한 노스텔지어를 느낍니다. 그러한 모든 감정과 심상이 음반 전반에 생생히 흐르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전체적인 음반의 분위기에 집중해서 얘기했으나, 저는 특히 13번 트랙 ‘The Last Illusion’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음악 기초 이론도 잘 모르는 그저 평범한 감상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트랙을 들을 때 도입, 전개, 전환, 고조, 절정, 변환, 마무리… 등등 음악에 있어 서사적인 구조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껏 좋아하는 동인음악 곡이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완벽에 가깝다’ 고 느낀 것은 onoken님의 ‘felys’ 외에는 거의 유일했습니다.
모든 음반은 하나의 음악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래된 도장이 꾹 찍힌 초대장을 내밀면서 “당신을 이 세계로 다시 초대할게요.” 라고 전하는 수준의 메세지 전달력을 지닌 앨범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Quest.>는 우리에게 유년시절의 세계를 생생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 세계로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아름답고 생생한 길잡이입니다.
안타깝게도 아티스트 Kiryu님은 2집 <Vida>를 마지막으로 음악활동을 중단하신 상태입니다. 저는 그분의 천재적인 창작물을 아직도 감상하고 있습니다. 비록 Kiryu님은 활동을 멈추셨지만, 그분이 남긴 세계는 계속해서 저를 추억속으로 초대하고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Official Site: https://kiryu-quest.tumblr.com
Bandcamp: https://le-kiriu.bandcamp.com/album/quest
Spotify: https://open.spotify.com/album/0tLmQcQ0aqgGVt3O0BjR4S?si=yuZWMi0QRPCWNRup39tsrg&dl_branc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