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6 여의도 더현대서울
인상파 미술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히노시타 아카메 작가의 <강의 도시의 셀린> 이라는 만화였다. ‘인상파가 그린 파리’, ‘피사로와 시슬레의 그림 같은 분위기’ 등 작가의 후기에서 이 만화가 담고있는 취향의 근원이 느껴졌고, 나도 주인공 셀린처럼 인상파 미술의 세계를 거닐어 보고 싶었다.
인상주의는 일상속 풍경에서 느낀 ‘인상’을 즉흥적으로 포착하듯 생생히 묘사한 미술 사조였다. 그래서 고고하고 웅장한 화풍을 선호하는 당시의 전통적인 미술계에서 가볍고 깊이가 덜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 역시 편안한 장소에서 차를 마시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인상파 화가들이 좋아하는 풍경에서 그리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 감정에 공감이 되었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은 오묘한 색감이 돋보였고, 보고 있노라면 그가 수련이 핀 연못을 얼마나 오랫동안 깊이있게 들여다 보았을지 쉽사리 짐작되지 않았다. 하늘도 연못도 경계가 흐릿해져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마저 풍덩하고 빨려들어가, 나와 타자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계에서 하나로 동화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네는 자신이 사랑한 지베르니의 정원과 연못, 그리고 수련 속에 진정으로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루앙 라크루아 섬> 속 나룻배가 떠다니는 루앙의 정경이나 알프레드 시슬레가 그린 <빨래터> 속 소박한 빨래터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런 은은하고 정겨운 풍경을 거닐며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차일드 하삼의 <프랑스 정원에서 꽃 따기>에서는 꽃이 가득 피어있는 정원의 화사함을, 존 싱어 사전트의 <코르푸 섬의 오렌지>속에서는 햇빛 아래 녹음이 피어난 그리스 코르푸 섬의 싱그러움을 마주했다.
장소는 모두 다르지만 화가들이 담아내고 싶었던 반짝이는 풍경이 담겨있는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전시의 부제가 ‘빛, 바다를 건너다’ 인 것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인상파의 바람이 태평양을 넘어 건너편의 미국에도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빛과 순간이 만들어내는 인상주의 표현 양식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으며, 한 나라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이 되었다.
어떤 예술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처음과는 예상치도 못했던 장소까지 강처럼 흘러가 거대한 바다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만들어 내곤 한다. 나 역시 그 인상파의 물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어느 바다까지 닿을 수 있을지 상상하며 설렘을 느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