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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Nov 01. 2022

부디 오래도록 살아주세요

이태원 참사를 보고

여고 시절 작가 박완서 선배님이 학교를 찾아오셨다. 가까이서 뵌 그녀는 유명 작가 답지 않게 겸손하고 말도 조곤조곤하셨다.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느리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어린 내 마음에 푸근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학교에서 방송 촬영이 있었다. 방송 촬영을 위해 모인 우리들 앞에서 선배님은 마치 오래간 사귀어온 친구를 만나듯이 편안하게 웃으며 얘기를 건네시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입시 준비 등으로 바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녀가 불과 3개월 사이 남편과 외아들을 잃었다는 것을 나는 그래서 조금 늦게야 알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너무 비현실적 상황이라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인자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던 분께 어떻게 그런 비극이 한꺼번에 닥쳤을까?  

그리고 수 일전 나는 그녀의 죽음 10주기라는 기사를 접했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 예전 뵈었던

그 모습 그대로 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그녀의 아픔이 다시 상기되었다.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을, 차마 만지기조차 아까웠을 어리고 귀한 아이들이 처참하게 스러져 갔다.  

내 자식 또래의 치기 어린  맑은 아이들.

한껏 멋 부리고 부모님께 인사하며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까.


오늘 아침 칼럼에 10년 전 아들을 떠나보낸 강상중 교수의 칼럼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로서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를  읽었다.   마음에 의식적으로 묻어 두었던 눈물이 또다시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금 비탄에 잠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신(神)조차도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있고 과거만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가버린 아이들이 남겨준 '과거'는 남겨진 사람들 안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 살아 있는 '과거'를 정중히 위로하고 슬픔의 유대를 통해 나눌 수 있다면 비극은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 위로의 말은 공허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굳이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살아주세요'라고 여러분의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분명, 그렇게 쓸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선배님은 이를 악물고 오래 살아 주셨구나.


제가 슬픔을 당한 부모의 마음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땅을 살아가는 같은 엄마 중 한 사람으로서 기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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