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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28. 2022

지독한 성장통 - 작품이 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세계 1,2차 대전을 치루고 경제적 번영기를 이루는 미국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은둔의 작가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성장소설이다.


이 책은 홀든이라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출구가 없는 청소년기의 방황과 아픔을 그리고 있다.

외견상 홀든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이 시대로 따지면 소위 금수저 아들이다. 그는 법률가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가정은 뉴욕에서도 상류층으로 살 정도로 유복하고, 형은 헐리우드에서 작가생활을 할 정도로 저명한 사람이다. 거기다 10세된 귀여운 여동생 피비는 그를 잘 따르며 때로는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동반자도 된다.


홀든은 우리가 보기에 결핍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런 유복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혼자만의 지독한 열병을 앓는다. 그래서 그는 17세의 나이에 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 다니고 이번 학교에서도 3과목의 낙제를 받아 퇴학을 당한다. 이 책은 그가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가야 하는 수요일 이전에 미리 학교를 나와서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혼자 방황하는 2박 3일간의 여정을 세밀한 돋보기를 대고 보듯 자세히 따라가는 내용이다.


이 또래의 아들을 둔 나로서는 그의 이유없는 방황을 지켜보면서 마치 내 아들의 모습을 보는 듯이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지만 그 학교와 그 속의 친구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속물이고 성적인 유희를 즐기거나 지저분하거나 남에게 무관심하다. 그 속에서 진짜 친구와의 우정을 찾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겉돌다가 토요일 밤에 룸메이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드디어 혼자만의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길을 나선다. 책은 그의 행동, 의식의 흐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정밀화를 묘사하듯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럼으로 인해서 나는 그와 함께 싸늘한 미국 밤거리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고 외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싸구려 호텔에서 남의 방을 엿보고, 벨보이의 말에 속아서 창녀를 불렀다가 후회하고, 단지 춤추고 싶다는 이유로 늦은 밤 클럽에 가서 낯선 여자들과 어울리며 히죽이고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그의 가슴 속에 서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부인하기 위한 어설픈 몸부림이다.


나는 17세의 나이에 불과한 그가 천연덕스럽게 그토록 숱한 비행을 저지른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 아들이 그랬다면 어땠을까 ?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밤거리를 배회하고 가는 곳마다 담배를 피우며 어른들의 클럽에서 노닥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왜 그렇게까지 방황하고 아플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잠들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줄곧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질문들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눈을 부라렸다.


학교에서의 부적응, 학업에 대한 무관심, 담배, 술등의 일탈을 본다면 그가 불량한 학생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홀든은 누구보다 순결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너무 순수해서 사람들의 불온한 세상에 선뜻 융화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천진하고 아직은 너무 여린 청춘으로 보였다. 홀든은 돈많은 친구들과 명문대를 다니나 실상은 성에 탐닉하는 형 등을 조롱한다. 오죽하면 여자친구 샐리를 만나서 산속 오두막에 들어가 함께 살자고 제안까지 한다. 물론 그는 바로 속물적인 그녀에게 했던 그 제안을 후회한다. 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질주의적이고, 겉과속이 다르며, 자시들의 부요함과 명성에 취해서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가 그나마 좋아했던 애톨리니 선생님은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라고 조언한다.


과연 홀든은 환경이 줄 수 없는 것을 찾는 사람에 불과한 걸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홀든은 자신의 여동생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진정한 희열과 행복감을 느낀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

그가 찾고 있던 것은 바로 그런 피비의 모습이었다.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발견되지 않았던 것 뿐이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거야“ 선생님은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겔의 말을 인용해서 그의 마음을 돌리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그러나 그런 선생님마저 그가 잠든 새에 동성애적인 접근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사수하고자 했던 홀든의 마지막 희망은 산산조각이 난다.


과연 우리의 성숙의 증거는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야말로 진짜로 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닐까? 나는 자문해 보았다.

홀든은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미성숙하기 때문에 성숙해야 되는 아직 연약하고 어린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리고 풋풋하다고 여겼던 그 시절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아름답게 성숙한 시간이 아닐까? 야만적인 세상의 부조리와 학업의 부담, 불투명한 미래를 견디면서 아프고 고통스러워 해보는 그 시간이야말로 정말 인간답고 살아있는 시간이 아닐까?


책에는 호밀밭도 파숫꾼도 없다. 그러나 나는 피비와 같은 천진한 아이들의 세계, 순수의 세계인 호밀밭을  지키고 싶어하는 파숫꾼  한 명을 만났다. 그의 지독한 성장통을 통해 나는  내 아들의 성장통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 자신의 이유없는 방황에 대한 변명도 마련했기 때문이다.내가 지켜야 할 호밀밭은 어디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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