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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28. 2022

사람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하지 않아

노인과 바다를 읽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한 번쯤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었다. 그의 책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관심은 항상 품어 왔다. 한창 문학을 열렬히 사랑했던 십 대 시절 그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단순 명쾌한 문장과 전개로 인해 막연히 동경심을 품었던 생각이 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구레나룻 회색 수염을 날리는 노 작가의 지적인 모습은 사춘기 소녀의 눈에 충분히 매력적이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의 명연기로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이들과 독서논술 수업을 하면서 수업 교재로 마침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된 건 나에게 개인적으로 절호의 기회였다. 4일간 망망한 대해에서 물고기와의 외롭고 황량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얘기라니, 얼마나 지루할까 하는 염려부터 앞서서 이전에는 감히 읽을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수업을 위해 이번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명성에 걸맞게 이 작품이 한 노인이 바다에서 벌이는 4일간의 치열한 사투를 통해 단순히 늙은 어부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전체의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덧 노인과 함께 그 사투의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서 어깨며 팔, 손등에 함께 상처 입고 좀처럼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는 물고기의 몸부림에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각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강한 흡인력에 압도되었고, 노인과 물고기의 외로운 분투인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엄한 서사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치밀한 표현력과 세밀한 관찰에 혀를 내둘렀다.


책에는 어부인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모습을 통해 낚시와 바다에 대한 세밀한 묘사들이 나오는데 이의 대부분은 실제 쿠바에서 생활하며 낚시를 즐겼던 헤밍웨이의 자전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니, 역시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라 할 만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느덧 산티아고 노인을 따라서 쿠바 아바나 연안의 바닷가에 가있었다.


 그는 84일간이나 고기를 잡지 못한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고, 이제 간신히 늙고 허약한 몸을 추슬러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84일간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음에도 그는 결코 주눅 들지 않고 과거를 훌훌 털고 다시 새로운 날을 준비한다. 그러나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에게 마침 걸려든 청새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인간의 손에 잡히길 거부한다. 낚싯대를 물었지만 좀처럼 자신의 생명을 양보하지 않는 청새치와 노인의 사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결전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바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게다가 우린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

결전의 시작은 호기롭고 노인은 다랑어를 먹으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쉽게 자기의 생명을 내놓지 않는 청새치와의 싸움은 만만치 않다.

그는 ‘ 과거에 이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


그가 분투를 벌이는 상대는 단순한 청새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숱한 문제들,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지만 충분히 감내할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고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고난이건 우리가 문제나 시련에 직면할 때 과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4일간의 고단하고 힘겨운 여정에서 노인을 괴롭히는 건 단순히 청새치만이 아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또한 감내해야만 했다.


불타는 태양과 밤의 외로움, 추위는 물론이고 수시로 그를 괴롭히는 허기와 목마름, 육체적 피곤함과 상처를  이기는 건 순전히 그 자신의 몫이고 진짜 이겨야 할 상대는 단순히 물고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게 ‘넌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라고 격려하면서 자신을 계속 희롱하는 물고기를 향해 ’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작정이구나 ‘ 하고 생각한다. 단순히 싸움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아니라 우리는 그의 생명을 향한 경외감, 사랑 가득한 존중을 보게 된다.


하지만 너도 그럴 권리가 있지, 나의 형제여. 난 너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존재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자 어서 와서 날 죽여라 , 누가 누굴 죽이든 난 이제 상관없다 ‘ 생계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야만 하고 사투를 감내하는 이 노인은 단순히 바다 위에서의 싸움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진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그를 진짜 인간다운 인간으로 우리에게 보이게 한다.


게다가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 않아’라는 말은 그가 우리 모두를 향해 던지는 삶의 조언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자랑스레 배 옆에 물고기를 고정한다.

물론 그러기까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나 싸움의 승자는 엄연히 노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싸움은 이로써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거친 파도와 외로움은 물론이고 물고기를 먹기 위해 몰려드는 상어 떼와의 싸움은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든 기력이 쇠해진 상태에서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몰려드는 상어 떼를  최선을 다해 물리친다. 배의 키는 물론이고, 각종 도구들을 잃을지언정 그는 물고기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끝까지 감내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뭍에 다다를 때 물고기는 상어에게 모두 뜯긴 채 뼈만 앙상하게 남고 노인은 상처 투성이 몸을 이끌고 오두막에 이를 때까지 다섯 번이나 주저앉았다가 늘 그렇듯이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쉼터에 이른다. 그런 노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의 곁의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진실을 이해해 주는 사람 한 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는 늙고 쇠잔한 한 인간이 바다와 물고기, 자기 자신에 대항해서 벌이는 장엄한 사투를 그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 및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지극한 애정을 보여준다.


치열한 자연과의 대결에서 결코 물러섬이 없이 끝까지 불굴의 초인적인 의지로 이겨내는 노인의 모습은 결국 삶의 숱한 고비와 시련을 이겨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노인이 자신을 둘러싼 자연에 대해서 경외와 사랑을 지녔듯, 결국 우리가 걷는 모든 여정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한 인간을 향한 헤밍웨이의 장엄한 찬사, 쿠바 바닷가에서 노인과 보낸 숨 막히는 4일간의 사투, 그 분연한 의지와 용기, 이 위대한 시간을  내 평생에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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